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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영 – a tempo

October 5th, 2009 8 comments

김작가님의 오소영 <A Tempo>에 트랙백
별이님의 오소영 2집에 트랙백

지금은 Blogspot으로 옮겨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어떤 블로그의 주인장께서 ‘2집이 기다려지는 가수들’에 언급한 적이 있었다. 사실, 정말 가수’들’이었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포스팅 덕분에 내 머릿속의 ‘기억상실’ 상태에서 해제된 아티스트는 ‘오소영’ 단 한 명이었으니까. 그렇게, 진열장 한 구석 묻혀있던 오소영의 1집 <기억상실>을 끄집어 냈다. 오소영의 2집 <a tempo>를 처음 손에 넣었을 때 모두가 느꼈을 감정이겠지만, “우리는 모름지기 미안해 해야한다. 그녀를 기억 너머로 보낼 뻔한 것을.”이라는 김작가님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만약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기억상실’인채 이 아름다운 음악이 묻혔다면 대체 누구를 탓할 것인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팬조차도 아티스트의 첫 앨범이 나온 뒤 다음 앨범까지 8년이라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정작 당사자인 아티스트라면 어떨까 생각해봤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1집의 동명 타이틀곡 “기억상실”의 가사를 머리 속에서 떠올리며, 나는 2집이 어떤 정서일지 궁금해졌다. 보기만 해도 쓸쓸한 1집의 아트워크, 표지 안쪽에 각인되어 있는 ‘hanamusicgroup’이라는 이름이 주는 상실감… 그리하여 계속 궁금해만 하던 중 무더웠던 지난 여름의 어느날 별이님께서 마스터링이 진행중이라는 희소식을 전해주셨다. 나중에야 향뮤직의 소개글(위의 트랙백한 포스팅과 같은 내용)을 쓰셨기에 미리 들어보셨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난 이렇게 지치고 외로운데
머물 곳이 필요해 어디로 가야 할까
도대체 내가 있는 여기는
어딘거야 어딘거야 어딘거야 도대체 여긴
어딘거야 어딘거야 어딘거야 도대체 여긴

오소영 – 기억상실 中 일부 발췌 (기억상실, 2001)

2집의 앨범을 손에 넣고(판매하는 곳이 향뮤직 하나라서 조금 늦게 구했다.) 아트워크를 보는 순간 나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타의 프렛에 걸쳐 목 위아래로 배치된 이름과 앨범 제목(‘a tempo’의 의미는 ‘본디 빠르기로’라고 한다), 1집 전반에 흐르던 혼란과 번민은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한 얼굴. 그리고 머리에 뿌려진 꽃(넌 미쳤어 나도 그래 그러니 우리는 Happy People’, “Happy People”中)…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름의 영문명 Osoyoung의 첫자를 형상화하는 초승달이었다. 가장 어두운 그믐이 지나고 찾아오는 초승달은 예로부터 희망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또한 더 이상 비울 것은 없고, 채울 것만이 남은 것이 초승달이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비유해 왔듯 달이 차고 기움이야 만고불변의 진리이고, 우리네 인생도 그처럼 항상 차고 기운다. 당장 엊그제 우리가 소원을 빌었던 한가위의 보름달도 한가위가 지났으니 서서히 빛을 잃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믐을 지나 초승까지 오는데 8년이 걸렸으니, 초승달처럼 은은하게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그녀의 노래는 당분간 보름달처럼 크게 차오를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소영 - a tempo

오소영의 2집 <a tempo>에 실린 노래들의 면면은 내 말이 트랙백을 보낸 두 걸출한 음악평론가 분들을 따라갈 수 없어 트랙백으로 대신한다. 난 장삼이사의 음악팬답게 아래의 가사(팬에게 보내는 노래라고 내 멋대로 생각중…)를 인용하며, (별점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은 좋아하지 않지만) 별 다섯 개의 추천으로 돌아온 포크여신에 대한 헌사를 대신하겠다. 그리고 10월 23일 클럽 타에서 열리는 공연(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1 free drink’의 미덕!)에서 만나뵙자고 감히 말하고 싶다.

수많은 낮과 밤을 지나
셀 수 없는 발자욱을 내며
난 무언가를 찾아 헤맸죠
이제야 나타난 그대는 나의 소울메이트
그대가 있기에 내가 살아있죠
내가 있기에 그대가 눈을 뜨죠
우리는 서로의 눈부신 세상
우린 서로의 믿을 수 없는 기적
우리는 서로의 빛나는 아침
이제 함께 부를 우리만의 노래

오소영 – Soulmate 中 일부 발췌 (a tempo, 2009)

덧붙임 첫번째 : 장필순·함춘호의 앨범이 시니즈 엔터테인멘트 기획이었는데, 오소영도 시니즈를 통해서 나왔다. 하나뮤직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걸까? 아시는 분은 댓글로 답변 좀 부탁드려요.

덧붙임 두번째 : 자, 그럼 이다오는 대체 언제…?

뮤지컬 <드림걸즈>

March 5th, 2009 No comments

지난 2월 22일, '세계초연'이라는 타이틀로 본격적으로 공연에 들어간 뮤지컬 <드림걸즈>를 봤다. 분명히 1980년대에 뮤지컬로 만들어졌는데, 대체 왜 초연이라고 얘기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원 뮤지컬과 2006년 개봉한 영화 <Dreamgirls>의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고, 이 뮤지컬은 영화를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홍보전략을 세웠지 않나…라고 막연히 추측해 본다.

나는 지금까지 뮤지컬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동안 노래는 성악가나 팝 아티스트보다 떨어지고, 춤은 댄서보다 떨어지며, 연주는 오케스트라보다 떨어지고, 연기는 배우보다 떨어지는 것이 뮤지컬배우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본 소감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드디어 뮤지컬에까지 오지랖을 넓혔으니, 앞으로 재정사정이 더욱 더 안 좋아질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미디어 시연이 24일이었고, VIP 시연이 28일이었다고 한다. 내가 본 것은 도대체 어떤 명목의 공연인지 통 감이 안 오지만, VIP초대권을 구해서 누구보다 먼저 이 뮤지컬을 보게 해 준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한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본 덕분에 먼저 열 받아야 했다. 사실 나는 22일 밤에 포스팅을 했다가 지웠다. 21일에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 끝나고 과음을 했고, 뮤지컬을 본 뒤에 다시 과음을 했더랬다. 무척이나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주연이었던 김승우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비난을 했었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나의 평소 신조와 달리) 포스팅을 지우고 출근을 했다. 김승우도 많은 노력을 했을텐데, 근거없는 비난은 옳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공식적으로 공연이 시작되기 전이라서 그런지 그 뒤로 며칠 동안 '드림걸즈'라는 검색어로 다양한 검색엔진에서 리퍼러가 찍혔고, 블로그의 방문자수가 상당히 늘었었다. 정보를 얻고자 블로그에 접속했는데, 포스트는 삭제되어 있으니 황당하셨을게다. 그동안 검색으로 이 블로그에 오셨던 분들에게는 (비록 그 분들이 보지는 않겠지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Dreamgirls Cast
Photographed by suksim with SCH-W270

뮤지컬의 전반적인 수준은 훌륭했다. 내가 본 공연은 김승우(Curtis Taylor Jr.), 차지연(Effie White), 정선아(Deena Jones), 최민철(James ‘Thunder’ Early), 김소향(Lorrell Robinson), 하지승(C.C. White)의 캐스팅이었다. 나는 이 배우들의 커리어에 대하여 잘 모르지만, 동행했던 친구(의 여자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다들 실력있고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친구의 말대로 모두들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몇몇 배역 또는 배우에 대하여 평해 보겠다. 차지연의 경우 에피 화이트에 걸맞는 성량과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에서 차지연의 가사가 음을 잃고 헤메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녀의 문제라기보다는 에피 노래들의 번안이 좀 어색했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정선아와 최민철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특히, 최민철은 지미라는 캐릭터를 형상화하는데 있어서 거의 완벽했을 뿐만 아니라, 출연진 중에 창법을 가장 소울 필로 소화해냈다. 커튼콜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것도 당연히 최민철이었다. 김소향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는데, 연기 외적으로 관객에게 부담을 줬다. <드림걸즈>에서 드림즈의 멤버들은 스토리상 노출이 상당히 심한 의상을 많이 입고 나오는데, 김소향은 가슴이 너무 커서… 사람들이 무척 부담스러워 했다. 하지승의 경우 실력 자체로만 따지면 최민철보다 더 우위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울의 측면에서 너무나 부족했다. 말하자면, 소울 필 가득해야 할 노래들을 커티스 테일러와 씨씨 화이트가 깨부수고자 했던 말랑말랑한 백인들의 창법으로 부르는 느낌이었다.

원래 내가 본 2시 공연은 오만석이 커티스 테일러로 나올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레 김승우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김승우 생애 최초의 뮤지컬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폭력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이 공연을 VIP석에서 공짜가 아니라 돈을 내고 봤다면, 커튼콜 때 무대로 뛰어올라가 김승우를 한 대 쳤을지도 모르겠다. 스타마케팅을 위한 캐스팅이니 뮤지컬 전문배우에 비해서 여러모로 실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 이해한다. 뮤지컬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변해버린 국내시장에서는 더더욱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내가 뮤지컬을 본 날 술에 취한 채로 포스팅을 하고, 몇 주가 지난 지금 다시 이렇게 포스팅을 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김승우는 우리의 상상계를 초월해있는 배우다. 초짜가 뭘 알겠냐마는 내 생각에 뮤지컬 <드림걸즈>는 매우꽤 훌륭한 뮤지컬이고, 김승우는 그 훌륭한 뮤지컬은 음의 함수로 바꿔버릴 수 있는 대단한 배우이다.

예를 들어, (번안곡의 제목을 모르므로 원곡으로 표시하면) "Steppin’ to the Bad Side"를 부르며 커티스와 그 일당이 차트 1위로의 전의를 다지는 신이 김승우의 첫 댄스신이다. 그에게는 그만의 시공간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홀로 다른 춤을 추거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박자로 춤을 춘다. 비장한 각오로 백인위주의 음반시장에 도전장을 던지는 커티스 테일러가 '나쁜 길로 가자'고 표독스럽게,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관중들은 위로의 눈빛을 보낸다. 또한 이런 것이다. 심지어 디나 존스가 커티스 테일러의 곁을 떠나고, 커티스 테일러가 "When I First Saw You"를 부르는 신. 모든 조명이 꺼지고 김승우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조명이 꺼진 어둠 속에 객석도 침묵에 묻혀간다. 괴로워하는 커티스 테일러. 그리고 그의 입이 열리고 노래의 첫 소절이 시작된다. 관객들은 웃는다. 김승우는 뮤키지컬이 아닌 '고음불가'의 방식으로 음정을 소화한다. 두 번째 소절이 끝날 즈음, 나는 조용히 욕을 내뱉었다. 장담하건데 지금까지 많은 공연을 봤지만, 아무리 수준낮은 공연에서도 나는 아티스트의 앞에서 욕한 적은 없다. 아무리 열받아도 그건 예의가 아니니까. 이번엔, 무의식중에 나와버렸다. 김승우가 대사를 한 마디하고 노래를 한 소절 부를 때마다, 전체의 흐름이 끊긴다. 다시 흐름을 타기 위해서는 꽤나 오랜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김승우 주연의 <드림걸즈>를 보고 감히 호평하기 위해서는, 나처럼 김승우와 김승우가 아닌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내 경우에 김승우가 아닌 것에 있어서는 괜찮았다.

- 2009년 2월 22일 샤롯데씨어터 with MJ

몰락의 에티카

February 11th, 2009 5 comments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나를 뒤흔드는 작품들은 절정의 순간에 바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들은 왜 중요한가.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덕분에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이 질문은 본래 윤리학의 질문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몰락은 하나씩의 질문을 낳고 그 질문과 더불어 새로운 윤리학이 창안된다. 그러나 한국어의 ‘윤리학’은 다급한 질문보다는 온화한 정답을, 내면의 부르짖음보다는 외부의 압력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 뉘앙스가 버성겨서 나는 저 말의 라틴어인 ‘에티카’를 가져왔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이 이런 것이라서 그토록 아껴왔거니와, 시정의 의론(議論)들이 아무리 흉흉해도 나는 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가지런해지던 날 나는 책을 묶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은 그때 정해졌고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 책을 이제야 낸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책머리에

가끔 아무런 코멘트가 필요없는 문장들이 있다. 고작 ‘책머리에’에 있는 짧은 문단을 며칠 동안 십 수 번 반복해서 읽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김현 선생의 <한국문학의 위상>은 내가 책상 앞에 늘 꽂아두는 책 중 유일한 문학평론집이었지만, 이제 신형철의 첫 평론집이 곧 추가될 것이므로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읽고 생각하고 소감을 남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