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은근히 바빠서 새해 들어서도 포스팅을 전혀 못 하고 있었는데, 이건 자랑해야 겠다.
1월 7일 음악의 신 Muse를 알현했다.
1월 18일에는 클리프 리차드 이후 가장 성공적인 내한공연으로 추정되는 Green Day 내한공연에 다녀왔다.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입사한 지 4년을 꽉 채우고도 18일만에 회사에 파스 붙이고 출근했다.
후기는 조만간.
이상 끝.
은근히 바빠서 새해 들어서도 포스팅을 전혀 못 하고 있었는데, 이건 자랑해야 겠다.
1월 7일 음악의 신 Muse를 알현했다.
1월 18일에는 클리프 리차드 이후 가장 성공적인 내한공연으로 추정되는 Green Day 내한공연에 다녀왔다.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입사한 지 4년을 꽉 채우고도 18일만에 회사에 파스 붙이고 출근했다.
후기는 조만간.
이상 끝.
김작가님의 오소영 <A Tempo>에 트랙백
별이님의 오소영 2집에 트랙백
지금은 Blogspot으로 옮겨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어떤 블로그의 주인장께서 ‘2집이 기다려지는 가수들’에 언급한 적이 있었다. 사실, 정말 가수’들’이었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포스팅 덕분에 내 머릿속의 ‘기억상실’ 상태에서 해제된 아티스트는 ‘오소영’ 단 한 명이었으니까. 그렇게, 진열장 한 구석 묻혀있던 오소영의 1집 <기억상실>을 끄집어 냈다. 오소영의 2집 <a tempo>를 처음 손에 넣었을 때 모두가 느꼈을 감정이겠지만, “우리는 모름지기 미안해 해야한다. 그녀를 기억 너머로 보낼 뻔한 것을.”이라는 김작가님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만약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기억상실’인채 이 아름다운 음악이 묻혔다면 대체 누구를 탓할 것인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팬조차도 아티스트의 첫 앨범이 나온 뒤 다음 앨범까지 8년이라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정작 당사자인 아티스트라면 어떨까 생각해봤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1집의 동명 타이틀곡 “기억상실”의 가사를 머리 속에서 떠올리며, 나는 2집이 어떤 정서일지 궁금해졌다. 보기만 해도 쓸쓸한 1집의 아트워크, 표지 안쪽에 각인되어 있는 ‘hanamusicgroup’이라는 이름이 주는 상실감… 그리하여 계속 궁금해만 하던 중 무더웠던 지난 여름의 어느날 별이님께서 마스터링이 진행중이라는 희소식을 전해주셨다. 나중에야 향뮤직의 소개글(위의 트랙백한 포스팅과 같은 내용)을 쓰셨기에 미리 들어보셨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난 이렇게 지치고 외로운데
머물 곳이 필요해 어디로 가야 할까
도대체 내가 있는 여기는
어딘거야 어딘거야 어딘거야 도대체 여긴
어딘거야 어딘거야 어딘거야 도대체 여긴오소영 – 기억상실 中 일부 발췌 (기억상실, 2001)
2집의 앨범을 손에 넣고(판매하는 곳이 향뮤직 하나라서 조금 늦게 구했다.) 아트워크를 보는 순간 나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타의 프렛에 걸쳐 목 위아래로 배치된 이름과 앨범 제목(‘a tempo’의 의미는 ‘본디 빠르기로’라고 한다), 1집 전반에 흐르던 혼란과 번민은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한 얼굴. 그리고 머리에 뿌려진 꽃(넌 미쳤어 나도 그래 그러니 우리는 Happy People’, “Happy People”中)…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름의 영문명 Osoyoung의 첫자를 형상화하는 초승달이었다. 가장 어두운 그믐이 지나고 찾아오는 초승달은 예로부터 희망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또한 더 이상 비울 것은 없고, 채울 것만이 남은 것이 초승달이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비유해 왔듯 달이 차고 기움이야 만고불변의 진리이고, 우리네 인생도 그처럼 항상 차고 기운다. 당장 엊그제 우리가 소원을 빌었던 한가위의 보름달도 한가위가 지났으니 서서히 빛을 잃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믐을 지나 초승까지 오는데 8년이 걸렸으니, 초승달처럼 은은하게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그녀의 노래는 당분간 보름달처럼 크게 차오를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소영의 2집 <a tempo>에 실린 노래들의 면면은 내 말이 트랙백을 보낸 두 걸출한 음악평론가 분들을 따라갈 수 없어 트랙백으로 대신한다. 난 장삼이사의 음악팬답게 아래의 가사(팬에게 보내는 노래라고 내 멋대로 생각중…)를 인용하며, (별점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은 좋아하지 않지만) 별 다섯 개의 추천으로 돌아온 포크여신에 대한 헌사를 대신하겠다. 그리고 10월 23일 클럽 타에서 열리는 공연(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1 free drink’의 미덕!)에서 만나뵙자고 감히 말하고 싶다.
수많은 낮과 밤을 지나
셀 수 없는 발자욱을 내며
난 무언가를 찾아 헤맸죠
이제야 나타난 그대는 나의 소울메이트
그대가 있기에 내가 살아있죠
내가 있기에 그대가 눈을 뜨죠
우리는 서로의 눈부신 세상
우린 서로의 믿을 수 없는 기적
우리는 서로의 빛나는 아침
이제 함께 부를 우리만의 노래오소영 – Soulmate 中 일부 발췌 (a tempo, 2009)
덧붙임 첫번째 : 장필순·함춘호의 앨범이 시니즈 엔터테인멘트 기획이었는데, 오소영도 시니즈를 통해서 나왔다. 하나뮤직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걸까? 아시는 분은 댓글로 답변 좀 부탁드려요.
덧붙임 두번째 : 자, 그럼 이다오는 대체 언제…?
지산밸리락페스티벌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던 관계로 Global Gathering을 예매한 뒤 후회는 없었다. 통장잔고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지만, 언제 다시 프로디지를 보랴. 펜타포트의 저주의 시발점이었던 트라이포트 2일차, 프로디지의 공연이 무산된 이후로 다시 이런 기회는 없을꺼라 믿었다. 그러나 제길 하필 그날 그룹 장학재단의 장학생 대상 채용상담이 있을 줄이야. 채용상담을 하고, 우삼겹에 소주까지 걸쭉하게 마신 뒤 서둘러 도망나왔다. 집에 오니 이미 열한시. 가방을 내려놓자 마자 어머니께 공연을 보러간다고 하니 어머니의 반응이 가관이다. 어찌되었건 택시를 잡아탔다. 아, 그러나 서부간선도로는 오늘도 막히고… 택시기사님께 나는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의 한국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콘서트인데요. 12시 시작이거든요. 무조건 가주세요.” 비틀즈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쨌든 기사님은 사명감으로 불타 미친듯이 질주하셨고, 나는 우편으로 배송된 입장권을 찾았다… 지 못했다. 제길, 회사 가방에 두고 왔어. 난지지구에 도착하니 11시 50분. 공연까지는 고작 10분이 남았을 뿐이다. 무조건 우겼다. 그러나 예매권 분실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재발급은 힘들고 다시 구매하거나 돌아가거나 두 가지 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스태프. 하지만, 난 증명할 수 있잖아! 내일 올 때 표를 가져와서 확인받겠다고 하고 겨우겨우 발권을 받았다. 담배를 한 대 꼬나물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무대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일제히 무대로 질주한다. 아, 프로디지의 등장이다.

60~70%가 외국인이었는데, 특히 남성들은 두 번째 곡의 시작과 함께 망설임없이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환희와 고통의 공연이 시작되었으니, 프로디지의 공연동안 나의 경험이란 다시는 할 수 없을 경험이었다. 내가 남은 평생을 치한으로 산다해도 접할 수 없을 이성의 살결과 가슴 육탄공세, 그리고 양키-남성들의 금발 가슴털+끈적끈적한 땀의 공세에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점프를 하려해도 낑겨서 내 힘으로는 점프할 수 없었다. 오호 통재라. Smack My Bitch Up이 나올 때쯤엔 거의 광란의 분위기였고, 나는 땀내로 가득찬 채 그저 광분할 수 밖에 없었다. 프로디지의 공연이 끝나고 나자 난 모든 힘을 잃었고, 바로 귀가했다.

이틀째 되는 날에는 2NE1을 보고 싶었지만, 절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의 생일파티인지라 압구정에 들러 친구들이 사주는 격려의 갈비찜을 먹고 전의를 불태우며 다시 난지지구로 향했다. Röyksopp, Revolver 69, Underworld, MSTKRFT로 이어지는 일정. 그러나 Röyksopp을 보고 나니 류승범이 포진한 Revolver 69는 아웃 오브 안중이 되었고, Underworld를 보고 나니 모든 체력이 고갈되어 집에 왔다. 최고의 공연은 Röyksopp. 아, 회사일정 때문에 못 본 포트벨리즈가 최고였다고 하긴 하더마는, 나는 Röyksopp 여성 보컬의 손을 무려 몇 초간이나 잡고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