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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들리지 않는 거리

February 2nd, 2009 4 comments

주말은 좋은 것이다. 특히나,
직장인에게는.

뭔 놈의 일복이 이렇게도 많은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싱황이지만, 입사한 지 만 3년-하고도 1개월-을 꽉 채우는 동안 금요일에 야근을 한 적은 없다. 우리 회사의 인당 생산성이 낮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일은 많겠지만 적어도 쓸데없이 야근을 시키는 회사는 아니니까,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에 야근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납기만 지키면 주말은 (온전하지는 않지만) 나의 것. 이번 주말에 나는 토요일은 쉬고, 일요일에 일하는 것으로 자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어제는 회사 동료 여직원 두 명과 <워낭소리>를 봤다. 2009년 초반의 시네마테크에서 상영관 하나는 꿰차고 있는 것은 물론, CGV·시너스에서도 상영하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듣자하니 <우리 학교>나 <송환>의 기록을 깰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나의 소감은 조만간 이 블로그에 포스팅할 터이니 자세한 것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현직 대통령이 한반도에 등장한 뒤로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도 그렇겠지만)의 모든 거리는 ‘기쁨이 들리지 않는 거리’(이 노래에 대해서도 조만간 포스팅하겠다)가 되어 버렸지만, 우리는 3.5인치 플로피디스크보다 정확히 0.56MB만큼만 똘똘한 분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최원균 할아버지가 삶을 살아가는 속도로 천천히 신문로를 걸어 성곡미술관 앞 커피점으로 이동해 Lucid Fall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신’이었을지도 모를 케냐 커피를 마셨다. 저녁까지 함께 있을 계획은 아니었는데, 그녀들도 그 ‘느림’이 좋았던지 계속 헤어짐의 시간을 늦췄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 10시경, 영화 한 편 보고 커피 한 잔 마시는데 8시간을 소모했으니 적어도 서울사람들의 생활속도는 아닌게다.

오늘 아침에는 몇 달 전부터 고등학교 친구들과 하고 있는 스터디가 있었다. 이 모임의 홍일점인 여자친구와 나는 다른 남자친구와 함께 최근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이 두 번 있다. 콘서트가 끝나면 우린 항상 공연얘기와 인생얘기로 술을 마셨고,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헤어졌다. 워낙 수상한 세상이니까, 친구와 나는 택시를 타고 여자친구의 집에 데려다줬다. 내가 집이 좀 머니까 택시비를 조금 더 냈(다고는 하는데, 나도 택시비 많이 받았는데…)다고 오늘 선물을 주는거다. 고맙다고. 회사에 와서 바쁘게 일하다가 뜯어보니 초코렛이다. 난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초콜렛은 가나초코렛 밖에 모르겠는데, 우리가 같이 본 공연 중 하나가 My Aunt Mary라고 일부러 Mary’s라는 이름의 초코렛을 샀나 보다. 아직 먹어보질 않아서 맛은 모르겠다. 일요일 출근처럼 짜증나는 게 없는데 큰 위안이 되었다. 물론, 대학동기 한 명이 스페셜 게스트로 와서 스터디가 끝난 뒤 인도요리(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Saag Gosht를 포함하여!)를 쏜 것 때문에 기분이 더 좋았을 것이다.

요약하면 다큐멘터리 하나 보고, 매일 마시는 맥심 모카골드 대신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고, 매주 하는 스터디에서 선물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이번 주말은 유별나게 여유롭고 행복했다. 까칠한 척 하지만, 사람도 삶도 그런 것이다. 우리가 걷는 거리가 기쁨이 들리지 않는 거리일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있음으로써 나는 기쁘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September 24th, 2006 2 comments

캐스팅 얘기부터 해야겠다. 영화 중반에 문유정(이나영)이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정윤수(강동원)를 초등학교 6학년, 문유정을 대학교 1학년으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이나영을 캐스팅한 것은 실수다. (극히 편파적인 견해이지만) 역시 이미숙 누님게서 정윤수의 ‘누나’로 제격이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밋밋하게 진행된다. 수려한 외모의 두 배우가 아니라면 잠들었을지도 모를 정도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진행속도가 빨라지면서 극도로 슬픈 분위기를 조성한다. 진행속도가 빨라지는 부분에서 같이 보러간 여성에게 손수건을 건냈으며(양복을 입고 간 게 다행이었다.), 2~3분 지나자 영화보는데 살짝 지장이 있을 정도로 사방에서 울음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렸다. 일반적으로 대중 로맨스 영화의 미덕이 영화 그 자체보다는 함께 보러간 여성과의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에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비교적 무난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슬픔에 공감해 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행복한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정도 윤수도 그 ‘행복한 시간’이 사형집행과 함께 끝나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정된 이별을 원치 않는 두 사람의 사랑이 이중나선을 그리면서 영화 종반부에서 비극성을 더해주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하지만, 애인이 사형수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다. 함께하는 시간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은 불사신이 아닌 이상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통 이별보다는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찰나의 순간들에 집중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스피노자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고, 연인들은 다시 오지 않을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다. 또한 비록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지만, 수 많은 가슴아픈 이별을 맛보았고 다시 맛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와의 ‘행복한 시간’을 찾아나선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정윤수의 식사장면을 제외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