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 Fleet Foxes
marishin님의 장아무개 오래 가긴 힘들 것 같다에 트랙백
댓글에 남기기에는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블로그에 트랙백을 겁니다. 장기하가 작년에 바람몰이를 했던 이유 중에 언급하신 레테르들이 아무 작용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달랑 3곡의 노래가 들어있는 EP 하나로 이 정도의 인기는 분명히 과분한 것이었겠죠. 하지만, 이번 앨범은 장기하의 앨범이 아니라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입니다. EP에 큰 감흥을 받지 못했던 저는 이번 정규앨범으로 오히려 장아무개와 그 ‘친구들’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어요. 장기하의 ‘개그’와 ‘유머’에 끌렸던 사람들은 ‘얼굴들’의 흡사 80년대 그룹사운드들의 재현과도 같은 연주들이 낯설어 견딜 수 없을테니 조만간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는 marishin님의 말씀이 적중할 꺼예요. 하지만, 그 자리는 힘든 세월을 이겨온 한국 대중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로 채워지겠지요. 이들을 통해 신중현을 만나고, 송창식을 만나고, 송골매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장기하와 얼굴들이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해준다면, 언젠가 우리가 ‘삶의 비극’을 겪으며 잊어버렸던 또 다른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댓글 끝.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를 들으며 한국 대중음악의 80년대를, Fleet Foxes의 <Fleex Foxes>를 들으며 영미 대중음악의 70년대를 매일 여행한다.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두 시기 다 락의 영광의 순간들이다. 게다가 회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움을 남아내는 이들의 음악은 한마디로 ‘경이’롭다.
장기하와 얼굴들를 쉽게 볼 수 없는 점은 음악 뿐만 아니라 가사에도 있다. 이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일정기간 단절되었던 서사를 부활시켰다. 나는 대중음악에서 ‘서사’의 전통이 사라진 시점이 015B 즈음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저 유명한 ‘신인류 시대의 사랑’이 직설화법으로 X세대의 사랑을 노래한다고 주목받던 그 시기. 015B는 당시로서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련된 팝을 들려주곤 했으니, 장기하와 얼굴들과 015B는 작사와 작곡 양 측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림 출처 : Wikipedia
브뤼겔의 Netherlandish Proverbs를 표지로 하는 Fleet Foxes의 동명 타이틀 데뷔앨범 또한 마찬가지다. 가끔은 Beach Boys가 떠오르고, 때로는 Bob Dylan도 생각나고, Neil Young도 떠오른다. 눈을 감고 이들의 하모니를 듣고 있노라면, 이름모를 어느 산 속에서 앨범의 아트워크처럼 인간사의 삼라만상을 모두 맛보는 느낌이다.
이 두 밴드가 있어서 요즘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