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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인간

May 19th, 2009 2 comments

사회면 기사를 보다가 그가 노동자일 때
흉악한 범죄자가 무슨 기업 무슨 공업 노동자일 때
내가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일하는 공장에 노동조합이 없거나
조합이 있어도 몸을 판 매음조합이거나
그도 아니면 짓눌려 살다가 얼이 나간 저능조합이거나
권리 행사를 원천 봉쇄한 악질기업일 때
법이 억압과 탄압을 보장 방관 묵인할 때

부당함에 대항해 싸울 권리를 박탈할 때
박탈당한 자는 부당한 자가 된다
그래서 소외 계층을 돌봐야 한단다
권리는 빼앗고 동정의 손길이 있어야 하므로
인간성 교육을 하잔다
부당함을 당해도 참아라 인내하라 할 말밖에
또 있으면 말해보라
자본은 힘과 지식과 시간만을 빼앗는 게 아니다.

백무산, “부당한 인간” (전문)

현 대통령이 사장으로 있던 회사가 거느리고 있는 계열사에서 일요일도 없이 하루 열 몇 시간을 일하며 청춘을 보낸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사장이 경영목표를 높이면 높일수록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 죽음만큼 많은 이익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사장 스스로 좋아하는 ‘불도저’라는 별명이 사실상 ‘살인자’와 동의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수많은 산업재해들이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30대의 초입에 들어설 무렵, 그는 이 땅의 노동현실을 시로 쓰기 시작한다. 백봉석이 아니라 백無産이라는 이름으로. 세월이 흘렀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또한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뀌어 갔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황석영이 손학규를 지지했던 2007년 대선에서 그는 문국현 지지선언을 했다. 황석영이 손학규를 지지하고 백무산이 문국현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백무산이 다니던 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회사의 사장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1996년에 발표된 이 시는 2009년 다시 현실이 되었다.

5월 18일이다. 1980년의 ‘학살자’와 2009년의 ‘살인자’는 결국 ‘따로 또 같이’이다. (한나 아렌트의 견해를 빌면) 1980년의 ‘학살자’가 “폭력은 정당화될 수는 있지만 결코 합법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현실에서 입증했던 반면, 2009년의 ‘살인자’는 “폭력은 권력이 위태로운 곳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현실에서 입증하고 있다.

바쁘게 일하다보니 날짜보다는 요일을 기억하게 된다. 성년의 날 때문에 시끌벅적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밤 11시를 조금 넘겨서 택시를 타고 퇴근했고, 5월 18일이 끝나기 5분 전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반 동안 재택야근을 했다. 그리고 이 포스팅을 쓰고 있다. 어쩌면, 백무산이 문국현을 지지하는 것 만큼이나 어색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故윤상원 열사처럼 도청사수를 부르짖으며 투쟁을 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삶에 찌들어도 ‘부당한 인간’으로 남지 않고 ‘오늘의 역사’를 잊지않고 새기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명확히 해 두기 위해 늦은 밤 자기모순의 포스팅을 한다. 열사의 말씀을 빌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January 21st, 2009 2 comments

Scrooge McDuck dives into money
일요일 아침에 KBS에선 디즈니 만화를 이것저것 틀어줬었다. 정말 재밌는 만화가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스크루지 삼촌! 돈 속에서 수영하는 것이 취미인 분이다. 나이가 들면서 돈에 대한 욕심도 떨어지고, 돈 속에서 헤엄치는 것 따위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돈 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가능한 나라가 딱 한 곳 있다. 짐바브웨다. 12500원만 투자하면 당신도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지난 주말 뉴스에 따르면 짐바브웨가 급기야 100조 짐바브웨 달러 화폐를 발행키로 했다고 한다. 100,000,000,000,000Z$!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러나 웃을 일이 아니다. 식민자본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채 독립하여 현 무가베 정권이 독재를 시작한 지 28년, 엎친데 덮친격으로 콜레라까지 덮친 짐바브웨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채 45세가 되지 않는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가게에 가도 빵을 살 수 없어, 쓰레기통을 뒤진다고 한다.

어쨌든 이 짐바브웨가 최근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사실을 지난 주말에 알게 되었다. 진중권이 단순히 사이버 모욕죄가 위헌판결을 받은 나라에 대한 예시로 짐바브웨를 든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중권의 선견지명이었나 보다. 오늘 슬픈분노할 수 밖에 없는 뉴스를 접했다. 이명박 정권이 하는 꼬라지가 콜레라보다 2메가배쯤 더 심한 구토를 유발한다는 것은 지난 1년동안 이 땅에 발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충분히 느껴왔던 사실이지만, 이제 사람까지 죽게 하니 정말 콜레라균보다 더 무서운지저분한 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촛불집회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고, 화염병-그것도 신나비율이 높고, 안에 소금간도 친-이 당장이라도 등장할 시국이 되어버렸다. 나는 문득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떠올렸다(아무 연관도 없지만, 난 원래 이따위 연상만 하는 이상한 놈이니까). 시절이 어수선하니 내 주변에서도 불신과 패배주의가 판을 친다. 그러나,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기에도 사랑은 있었으니까. 명바콜레라가 스크루지 삼촌의 수영장에서 헤엄을 치든 말든 우리는 서로 믿고 신뢰하고 지켜주고 보듬으며 사랑으로 항해를 계속해야 하지 않나 싶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덧붙임 첫번째 : 일이 너무 많아서 이틀밤 동안 6시간도 자지 못했는데, 잠이 확 깨는 뉴스를 차근차근 읽다보니 정말 피가 끊어오른다. 그러면서도 내가 주말출근에 야근까지 해가면서 하고 있는 일이 직·간접적으로 돌아가신 분들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젖어 글을 쓰고 있다.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을 한시바삐 찾아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런 회사를 찾는 건 ‘정직한 자본가’만큼이나 찾기 힘들 것 같기도 하고.

덧붙임 두번째 : 꾸벅꾸벅 졸면서 쓰고 나니 마지막 문단이 한승수처럼 느껴질 법도 한데, 그런 뜻 절대 아니다.

덧붙임 세번째 : 짐바브웨 공화국(Republic of Zimbabwe)이 공식명칭인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짐바브웨는 반투어로 ‘돌로 만든 거대한 주거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그레이트 짐바브웨에서 따 온 이름이다. 짐바브웨의 과거에는 몸을 누울 돌집이라도 있었지, 오늘 영면하신 분들은 집도 없이 가셨구나.

덧붙임 네번째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직도 반투어는 낯선 언어겠지만, 우리는 반투어 단어를 하나 알고 있다. Ubuntu가 바로 반투어에서 온 이름으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Ubuntu Logo

덧붙임 다섯번째 : 워드프레스에서 두 줄 이상 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전엔 알았던 것 같은데.

미네르바

January 11th, 2009 2 comments

미네르바가 구속되었다. 나는 학교 선배가 메신저를 통해 보내준 두 세 문단 정도 분량의 일부분을 본 적은 있어도, 아고라에 가서 미네르바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최근 정부가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면 ‘전문대 출신의 30대 무직자’ 한 명 구속시키는 건 참 쉬운 일이다. 사실 언론사들의 ‘방송법 파업’ 직후라는 시기와 맞물려 (특히 사이버공간을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정당한 것을 말할 권리, 평화를 추구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수감중인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해 왔다.

나는 20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나 금년의 촛불집회에 함께 하지 못했다. 하지만, 6개월 전 그 거리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지키려던 가치가 무엇인지는 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노무현이 불쌍해서 나왔을 수도 있고, 정말 미국산 쇠고기가 먹기 싫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민주주의’다. 18세기 영국의 루소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해 ‘영국의 인민들은 의원을 뽑는 동안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난 직후에는 다시 노예로 돌아가 버린다’고 말했지만, 21세기 한국의 민중들은 ‘헌법 제1조’를 부르짖으며 거리로 나섰다. 정권이 명박산성을 쌓고 물대포를 뿌려가며 기를 쓰고 촛불집회를 막은 것은 아마도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시 6개월 더 과거로 돌아가면 아마 2007년 12월 19일을 이야기할 것이다. BBK 사건, 도곡동 땅, (주)다스, 상암DMC 등 여러가지 ‘의혹’들에 비하면 미네르바의 ‘허위사실 유포’는 완전히 애교가 아닌가? 그러나 국민들은 그가 자신들의 다종다기한 ‘욕망’들을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이른바 ‘대의제 민주주의의 꽃’ 선거에서 이명박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명박 특검’은… 모두가 예상했던대로 조용히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사건인가 하면, 똥이 가득찬 변기통이 “이거 똥 아니예요”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래 그거 똥이 아니라 된장이야”라고 수긍해 준 꼴이다. 그래서 지난 대선결과는 온 국민이 합심하여 사기와 거짓으로 잘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면죄부를 준 셈이다.

사람들이 미네르바에 열광한 것과 이명박에 열광한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식과 펀드에 쏟아부은 돈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인하여 반토막이 나고, 부동산의 꿈은 미분양 등으로 인한 주택경기 침체로 좌절된 상황에서 미네르바의 글들은 새로운 ‘욕망’이 되기에 충분했나 보다. 그리고 ‘엘리트 기업인’이 아닌 ‘30대 백수 무직자’ 미네르바에 대한 실망은 결국 우리가 욕망의 속살 위에 얇디 얇은 옷 한꺼풀 밖에 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는 헤겔의 말을 상기하며, 작금의 ‘미네르바’ 사태는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사회가 모두 망조에 이르렀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6개월 전으로 돌아갈 것인사? 아니면 1년 전으로 돌아갈 것인가? 나는 미네르바의 정체보다 그게 더 궁금하다. 그리고 나도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