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Posts Tagged ‘서정주’

자화상(自畵像)

April 13th, 2009 3 comments

선배는 술꾼이었다. 밤이 깊어도 가지 않았다.
황무지같이 텅 빈 술안주와 참이슬이 한 병 서 있을 뿐이었다.
선배는 술을 두고 오돌뼈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술병으로 바람벽 한 전등불 밑에
지갑이 텅 빈 상황의 선후배.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술집을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고학번 선배의 무조건 원샷과
그 엄청난 술버릇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한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술이었다.
음주는 가도가도 너무 좋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폐인(廢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주당(酒黨)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해장 위해 먹는 탕(湯)의 국물에는
몇 방울의 술이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참이슬 가득 마신
취한 술꾼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2000년 9월의 어느 날 내가 남겼던 흔적. 우연히 발견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