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경기도민인 나는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사당역까지 이동하여, 사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유난히 눈에 띄는 플래카드들이 있으니, 바로 우측통행 홍보 플래카드들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좌측통행’이 우리의 모토였고, 계속 그렇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우측통행이라니 왠일인가 싶다.
그러고보니, 중학교 3학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논술과외를 했던 기억이 난다. 과외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친구어머니가 자기 아들 한 명 앉혀놓고 논술을 지도하기가 애매하니까, 동네 애들 불러서 같이 지도하고 수고비조로 과외비를 조금 받는 수준이었다. 어쨌든 그 논술수업 때 ‘좌측통행을 실시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논술하라’는 주제로 논술문을 작성한 적이 있다. 다른 아이들의 주장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체 이딴 걸 무슨 목적으로 쓰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겨우겨우 뭔가 썰을 풀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좌측통행이 오른손잡이를 중시하는 우리네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논술했었다. 나 자신도 왼손을 쓰다가 할머니한테 손을 매번 맞고 오른손으로 고친 입장이었고,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 꽤나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좌측통행을 하면 자연스레 좌반신이 벽쪽으로 향하고 우반신이 개방된 공간에 노출되기 때문에 주로 사용하는 오른손이 비교적 자유롭게 되므로 합리적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보이스카웃과 걸스카웃이 아닌 다음에야 왼손으로 악수를 하는 것은 ‘싸가지 없는 놈’으로 불리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길가다가 누굴 만났을 때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려면 당연히 좌측통행이 합리적이기도 하고. 이와 유사한 이야기들을 사례를 들어 열심히 설명했다. 논술문의 전체적인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평을 들었던 것 같다.
검색엔진에서 ‘우측통행’으로 검색하면 사회가 우경화되다보니 ‘우측’통행의 구호가 난무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평범한 중학교 3학년이 논술한 것이 사실이라면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때 최고의 학용품이었던 ‘바른손’처럼 항상 오른쪽은 ‘바른’ 것이었고, 왼쪽은 ‘그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좌익’, ‘좌파’와 같은 단어 또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열심히 강조하는 우측통행이 정착되면, 이제 주말에 길을 걷다가 직장상사를 만나면 가까운 왼손을 놔두고 멀리 떨어진 각자의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해야 할 것이다. 일단 불편하고, 통행에도 조금은 방해가 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내 딸과 내 아들이 학교에 다닐 때쯤이 되면 모두의 머리 속에 우측통행이 각인될께고, 이제 왼손으로 악수를 해도 욕을 먹지 않게 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 본다. Jimi Hendrix의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그쪽이 내 심장과 가까우니까.”라는 말이 ‘왼손잡이’ 기타리스트의 불경한 발언이 아니라 보편적인 진리로 여겨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악수하는 손이 바뀌지 않더라도 항상 나쁜 것으로 차별받고 억압받았던 ‘왼쪽’의 것들이 조금씩 권리를 되찾을 지도 모른다. 또한, 이재오를 ‘이명박의 오른팔’이 아니라 ‘이명박의 왼팔’이라고 부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80% 이상이 농담인 포스팅이지만, 혹시 알아? 훗날 ‘왼쪽’의 권리를 찾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이 2009년 대한민국 정부가 실시한 ‘우측통행’ 정책이었다는 말이 나올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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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밸리락페스티벌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던 관계로 Global Gathering을 예매한 뒤 후회는 없었다. 통장잔고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지만, 언제 다시 프로디지를 보랴. 펜타포트의 저주의 시발점이었던 트라이포트 2일차, 프로디지의 공연이 무산된 이후로 다시 이런 기회는 없을꺼라 믿었다. 그러나 제길 하필 그날 그룹 장학재단의 장학생 대상 채용상담이 있을 줄이야. 채용상담을 하고, 우삼겹에 소주까지 걸쭉하게 마신 뒤 서둘러 도망나왔다. 집에 오니 이미 열한시. 가방을 내려놓자 마자 어머니께 공연을 보러간다고 하니 어머니의 반응이 가관이다. 어찌되었건 택시를 잡아탔다. 아, 그러나 서부간선도로는 오늘도 막히고… 택시기사님께 나는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의 한국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콘서트인데요. 12시 시작이거든요. 무조건 가주세요.” 비틀즈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쨌든 기사님은 사명감으로 불타 미친듯이 질주하셨고, 나는 우편으로 배송된 입장권을 찾았다… 지 못했다. 제길, 회사 가방에 두고 왔어. 난지지구에 도착하니 11시 50분. 공연까지는 고작 10분이 남았을 뿐이다. 무조건 우겼다. 그러나 예매권 분실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재발급은 힘들고 다시 구매하거나 돌아가거나 두 가지 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스태프. 하지만, 난 증명할 수 있잖아! 내일 올 때 표를 가져와서 확인받겠다고 하고 겨우겨우 발권을 받았다. 담배를 한 대 꼬나물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무대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일제히 무대로 질주한다. 아, 프로디지의 등장이다.

60~70%가 외국인이었는데, 특히 남성들은 두 번째 곡의 시작과 함께 망설임없이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환희와 고통의 공연이 시작되었으니, 프로디지의 공연동안 나의 경험이란 다시는 할 수 없을 경험이었다. 내가 남은 평생을 치한으로 산다해도 접할 수 없을 이성의 살결과 가슴 육탄공세, 그리고 양키-남성들의 금발 가슴털+끈적끈적한 땀의 공세에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점프를 하려해도 낑겨서 내 힘으로는 점프할 수 없었다. 오호 통재라. Smack My Bitch Up이 나올 때쯤엔 거의 광란의 분위기였고, 나는 땀내로 가득찬 채 그저 광분할 수 밖에 없었다. 프로디지의 공연이 끝나고 나자 난 모든 힘을 잃었고, 바로 귀가했다.

이틀째 되는 날에는 2NE1을 보고 싶었지만, 절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의 생일파티인지라 압구정에 들러 친구들이 사주는 격려의 갈비찜을 먹고 전의를 불태우며 다시 난지지구로 향했다. Röyksopp, Revolver 69, Underworld, MSTKRFT로 이어지는 일정. 그러나 Röyksopp을 보고 나니 류승범이 포진한 Revolver 69는 아웃 오브 안중이 되었고, Underworld를 보고 나니 모든 체력이 고갈되어 집에 왔다. 최고의 공연은 Röyksopp. 아, 회사일정 때문에 못 본 포트벨리즈가 최고였다고 하긴 하더마는, 나는 Röyksopp 여성 보컬의 손을 무려 몇 초간이나 잡고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나는 트렌디한남 따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대세에 따라 블로그를 해외로 이전했다. 아무래도 가입형 블로그는 이제 답답해서 못 쓸 것 같아서, 그리고 이전의 서버였던 미리내의 서비스가 다소 불만이었기에 호스팅 서버를 해외서비스인 Media Temple로 옮겼다. 국내의 서비스가 좋은 호스팅서비스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서비스는 대만족이다. 그러나, 한글로 된 매뉴얼이 없는 관계로 익숙해지기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7월말에 이전을 시작하여 9월 말에 완료한 데는 영어의 압박이 컸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데이터베이스(MySQL)의 이전이었는데, phpMyAdmin의 버전이 달라 UTF-8 인코딩이 깨져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해도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아예 과거의 블로그는 수작업으로 천천히 옮기고 새로 블로그를 생성하려 했었다. 다행히 8con.net으로 유명한 8con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셔서 삽질을 면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한 없는 감사를.
지난 번 미국 출장 결과를 보고하면서 같이 갔던 계열사 일행이 Web 2.0에 대해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때부터 뭔가 위기감을 느꼈는데, 최근에는 Twitter의 열풍 때문인지 사내 KM에 오만가지 웹서비스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나는 중학교 때부터 회사까지 아이디 또는 닉이 모두 동일하므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회원제 사이트는 일제 정리를 할 예정이고 이 블로그는 폭파 1순위이겠지만, 나는 이 블로그의 몇 안 되는 구독자 분들께 말도 안되는 약속을 해 버렸기 때문에 블로그는 없앨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운영중인 블로그 등과 가입된 모든 사이트에서 ID 혹은 닉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으니… 이 곳도 예외는 아니다.
(임시)이름을 뭘로 할까 하다가 ‘말없는 등으로 기대고 나눈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고, 올해도 포스팅에 한 번 등장하셨던 바 있는 백무산 시인의 시 「침묵」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감히 나 같은 인간이 인용할 시는 아니지만, 난 개념이 없으니까…는 아니고… ^^a
입보다는 등으로 ‘말’하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이라고 해 둡시다.
나무를 보고 말을 건네지 마라
바람을 만나거든 말을 붙이지 마라
산을 만나거든 중얼거려서도 안된다
물을 만나더라도 입다물고 있으라
그들이 먼저 속삭여올 때까지
이름 없는 들꽃에 이름을 붙이지 마라
조용한 풀밭을 이름 불러 깨우지 마라
이름 모를 나비에게 이름 달지 마라
그들이 먼저 네 이름을 부를 때까지
인간은
입이 달린 앞으로 말하고 싸운다
말없는 등으로 기대고 나눈다
백무산 –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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