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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March, 2009

장기하와 얼굴들, Fleet Foxes

March 17th, 2009 3 comments

marishin님의 장아무개 오래 가긴 힘들 것 같다에 트랙백

댓글에 남기기에는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블로그에 트랙백을 겁니다. 장기하가 작년에 바람몰이를 했던 이유 중에 언급하신 레테르들이 아무 작용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달랑 3곡의 노래가 들어있는 EP 하나로 이 정도의 인기는 분명히 과분한 것이었겠죠. 하지만, 이번 앨범은 장기하의 앨범이 아니라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입니다. EP에 큰 감흥을 받지 못했던 저는 이번 정규앨범으로 오히려 장아무개와 그 ‘친구들’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어요. 장기하의 ‘개그’와 ‘유머’에 끌렸던 사람들은 ‘얼굴들’의 흡사 80년대 그룹사운드들의 재현과도 같은 연주들이 낯설어 견딜 수 없을테니 조만간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는 marishin님의 말씀이 적중할 꺼예요. 하지만, 그 자리는 힘든 세월을 이겨온 한국 대중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로 채워지겠지요. 이들을 통해 신중현을 만나고, 송창식을 만나고, 송골매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장기하와 얼굴들이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해준다면, 언젠가 우리가 ‘삶의 비극’을 겪으며 잊어버렸던 또 다른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댓글 끝.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를 들으며 한국 대중음악의 80년대를, Fleet Foxes의 <Fleex Foxes>를 들으며 영미 대중음악의 70년대를 매일 여행한다.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두 시기 다 락의 영광의 순간들이다. 게다가 회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움을 남아내는 이들의 음악은 한마디로 ‘경이’롭다.

장기하와 얼굴들를 쉽게 볼 수 없는 점은 음악 뿐만 아니라 가사에도 있다. 이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일정기간 단절되었던 서사를 부활시켰다. 나는 대중음악에서 ‘서사’의 전통이 사라진 시점이 015B 즈음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저 유명한 ‘신인류 시대의 사랑’이 직설화법으로 X세대의 사랑을 노래한다고 주목받던 그 시기. 015B는 당시로서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련된 팝을 들려주곤 했으니, 장기하와 얼굴들과 015B는 작사와 작곡 양 측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Netherlandish Proverbs
그림 출처 : Wikipedia
브뤼겔의 Netherlandish Proverbs를 표지로 하는 Fleet Foxes의 동명 타이틀 데뷔앨범 또한 마찬가지다. 가끔은 Beach Boys가 떠오르고, 때로는 Bob Dylan도 생각나고, Neil Young도 떠오른다. 눈을 감고 이들의 하모니를 듣고 있노라면, 이름모를 어느 산 속에서 앨범의 아트워크처럼 인간사의 삼라만상을 모두 맛보는 느낌이다.

이 두 밴드가 있어서 요즘 너무 행복하다.

30분

March 17th, 2009 No comments

예전부터 그랬다. 나는 할 일이 많으면,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일을 잘 완수하는 편도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에만 매달리다가 결국에는 ‘오대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그간의 경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집단에 속해있든 일복이 넘쳐흐르는 부류의 인간이었으니, 그동안 내 주위의 사람들을 얼마나 실망시켰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때마다 나는 멋진 핑계를 만들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물론 ‘업무’로서의 일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등 수많은 ‘일’들이 존재할 수 있다.

내일은 우리 회사의 중요사안을 회장에게 보고하는 날이라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방금 퇴근했다. 보통 밤을 새곤 하니까, 비교적 일찍 끝난 편이다. 할증택시에 노곤한 몸을 기울이며 아이팟을 꺼내 들었다. 이럴 땐 Jowall의 This is the Night이 제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밤으로 달려가는 곡. 그 곡을 들으며, 잠시 상념에 젖었다. 그리고 그동안 나의 일들을 방기하게 되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일만 있었고, 내가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체는 ‘나’인데, 정작 나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채 엉뚱하게 일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갈리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이 포스팅을 쓴다. 나중에라도 나 스스로 까 먹지 않도록. 아무리 바쁘더라도 나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고 다시금 내 사람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루에 30분씩만 투자하자.

헤헤

March 9th, 2009 3 comments

어제 블로그에서 만난 모님에게도 한 얘기지만, 내가 전공한 언어학에는 자질(features)이라는 개념이 있다. 특히 프라하 학파(Prague Schule)를 중심으로 한 전통 음운론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개념인데, 말하자면 소쉬르가 이야기한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의 직계후손이다. 이 시기의 언어학은 주로 음운을 중심으로 언어를 사고했는데, 특히 음운을 '변별적 자질들의 묶음'으로 생각했다. 변별적 자질(distinctive feature)은 음운을 변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특성, 말하자면 음성학적인 요소들이며 +와 -로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이항대립적 특성을 가진다.

야밤에 전화 한 통 받고 기분이 좋아졌다. 나 또한 많은 변별적 자질을 지니고 있겠지만, 말하자면 '+빠돌'의 자질은 확실히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의 자세한 얘기는 생략한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