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Archive for February, 2009

Dead Link 혹은 death on line

February 15th, 2009 16 comments

예전 포스트에 가끔식 댓글을 달아주시는 블로거가 한 분 생겼다. 덕분에 답글을 달면서 예전에 썼던 포스트들을 종종 읽곤 한다. 대부분은 하릴없는 헛소리들이지만, 그 포스트를 쓴 당사자이다 보니 그 헛소리들에 얽힌 오만가지 기억들이 떠올라서 혼자 키득키득하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외부링크의 대부분이 죽어있다는 점. 경우에 따라서는 읽는 맛을 살리기 위해서 링크를 열어봐야만 충분히 의미가 통하도록 쓴 문장들도 있는데, 이제는 나조차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데드링크의 종류는 다양하다. 당시 개봉했던 영화의 홍보 홈페이지가 사라진 경우는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 링크들은 , IMDbKMDb로 링크를 수정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블로그의 주인장이 다른 블로그 서비스나 블로그툴로 이사한 경우에도 변경된 링크를 찾아서 이어주면 될 일이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블로거가 책을 내면서 컨텐츠가 온라인에서 삭제된 경우에는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하이퍼링크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 뿐, 우리가 연결되었던 흔적은 언제고 서점에서 찾을 수 있을터이니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아쉬운 것은 홈페이지나 설치형 블로그의 계정 자체가 사라진 경우이다. 예전에 보던 익숙한 레이아웃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404 에러 또는 '이 도메인을 사려면 어디로 연락하라'는 메시지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 인기있었던 블로거의 도메인에는 비키니…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묘령의 여성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웹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학계에서는 논문 발표후 종종 인용된 해당 사이트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데드링크가 나는 일에 대한 우려로 학술 프로젝트까지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 데드링크는 업계용어로 '대략난감'이다.

어쨌든 데드링크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설치형 블로그인 WordPress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뭔가 모골이 송연해진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급사한다면 이 블로그는 어떻게 될까? 보통 나는 2년 단위로 호스팅을 연장하니까, 운이 좋으면 블로그는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 삶을 연장할 것이다. 그 누구의 댓글에도 답글이 달리지 않은 채, 내 아이디 묻힌 블로그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그러다가 계약된 기간이 지나고, 호스팅업체가 배려해주는 몇 주의 시간마저 지나면, 이 블로그는 인터넷의 역사 속으로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얼마 안 되는 블로그의 손님들은 궁금해하겠지. 무슨 일이 생겼을까? 블로그가 재미없어진 걸까? 블로그를 5년 정도 해 오면서 MSN에서 친구신청을 한 사람도 몇 명 있었으니까, 정말 궁금한 사람은 About 페이지에서 나의 MSN ID를 찾아 친구신청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수락할 수 없으니 그저 그걸로 끝일테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잊혀져갈 것이다. 나의 본명으로 살아가는 오프라인에서 살아가는 나의 삶은 이미 장례라는 절차를 통해 끝났겠지만, suksim으로 살아가는 온라인에서의 나의 삶은 나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는 사람이 남아있지 않게 되는 그때 쯤 끝날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이 온라인에서의 죽음인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할머니와 큰아버지의 나이차는 채 열 살이 되지 않는다. 내가 '큰할머니'라고 부르는 할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박을 맞았고, 작은 집의 큰 아들이었던 큰아버지께서는 기제사를 위해 할아버지에게 입적되었다. 큰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무공훈장을 받아 돌아오셨고, 대신 남은 평생동안 다리를 조금 절게 되었다. 지지리도 못 살던 동생들은 자식들이 다들 장성하여 노년에 편하게 사는데, 반쯤 미친 큰며느리와 알콜중독으로 자살한 작은 아들, 정신지체로 인해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못한 막내아들 때문에 말년까지 고생하셨다. 재작년 11월, 치매로 1년 이상을 요양원에서 머무르던 큰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는 식사도 제대로 안 하셨다고 한다. 큰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조상에 대한 사대봉사를 빌미로 그렇게도 고생을 시키시더니 마음 속으로는 진정 사랑했던 것일까? 큰어머니의 1주기를 며칠 안 남기고, 큰아버지께서도 눈을 감으셨다.

그래서, 작년 11월 오랜만에 대구에 다녀왔다. 큰아버지라고는 해도 할머니 뻘이니 호상으로 봐도 무방하니까 나는 가급적 웃고자 했다. 할아버지를 잃은,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고 싶었던 조카들을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것이, 한국 근현대사의 수많은 질곡을 체험하다 못해 몸 안에 아로새긴 채 살아왔던 그에 대한 예의-살아계실 때는 반항했으니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빈소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고, 나는 금새 웃음을 감추어야만 했다. 역시나 지금은 데드링크가 되어버린 C의 블로그에서였던가, 바람직한 빈소의 분위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죽는다면, 사람들이 나의 빈소에 와서 웃었으면 좋겠다. 나의 좋았던 모습은 칭찬하고 나빴던 모습은 욕하면서, 그/녀들과 내가 함께했던 시간들을 3일 동안이나마 추억해줬으면 좋겠다. 발인까지 끝나면 각자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터, 어차피 인생은 공수레공수거인데 웃으면서 떠나보내면 되지 굳이 울며 불며 아쉬워할 필요없지 않은가.

아직은 공식적으로 유언장을 쓸 나이는 아니지만, 언젠가 유언장을 쓰게 되면 기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문구와 함께 블로그에 나의 장례식장을 알리는 포스팅을 하라는 내용-접속하는 방법도 기재하고-을 반드시 넣겠다. 만약에 그때까지 우리가 온라인에서나마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라면, 조의금 따위는 필요없으니 퇴근길에 잠깐 들러줬으면 좋겠다. 조문객으로 온 블로거들은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일 수도 있지만, 세상은 좁으니 서로 아는 사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빈소에서 건배를 하기는 좀 그러니까, 조심스레 술잔을 건네면서 웃으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야기 속에 불청객처럼 끼어들었던 나의 이야기도 잠시 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직은 젊고 죽음을 이야기하기는 모두가 아직은 창창한 우리에게, 이러한 얘기는 아직 섣부르다 못해 건방져 보이기까지한 얘기일터. 나의 블로거 친구들, 오프라인에서의 삶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온라인에서나마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울고 웃으며 싸우고 화해하며 행복하게 지내봅시다.

데드링크 혹은 온라인 죽음일랑 나중에 다시 생각하고.

발렌타인

February 14th, 2009 7 comments

고락을 함께 나누지는 않지만 일종의 의리일까, 직장의 여성동료들은 매년 오늘이 되면 초콜렛을 선물하곤 했다.
오늘은 2009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이다. 그리고,
토요일이다.
초콜렛은 문자로 대체되었다.

발렌타인데이에 대해서 진지하게 까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못 받는 것보다는 많이 받는 게 미덕이라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오늘 2009년 들어 첫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 상대는 무척이나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하고 물어보니, 삼겹살에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한다(갑자기 급호감!).
삼겹살을 먹는 도중에, 쉬지 않고 움직이던 입이 잠시 멈추었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금박으로 포장된 초콜렛을 꺼내더니 두 손으로 나에게 건낸다.
“어제 직접 초콜렛을 만들었는데, 아침에 못 챙겼어요. 오늘 회사 10분 지각했거든요. 이걸로 대신할께요.”
뭘 이런 걸 다.

지금 그 초콜렛을 먹으면서 포스팅을 한다.
그렇다. 여러분들은 이 블로그에서 몇 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성격의 포스팅을 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잔치에 놀아난다는 느낌은 항상 들지만 역시나 많이 받는 것이 미덕인 오늘,
모두들 행복한 발렌타인 데이 보내시길.

몰락의 에티카

February 11th, 2009 5 comments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나를 뒤흔드는 작품들은 절정의 순간에 바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들은 왜 중요한가.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덕분에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이 질문은 본래 윤리학의 질문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몰락은 하나씩의 질문을 낳고 그 질문과 더불어 새로운 윤리학이 창안된다. 그러나 한국어의 ‘윤리학’은 다급한 질문보다는 온화한 정답을, 내면의 부르짖음보다는 외부의 압력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 뉘앙스가 버성겨서 나는 저 말의 라틴어인 ‘에티카’를 가져왔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이 이런 것이라서 그토록 아껴왔거니와, 시정의 의론(議論)들이 아무리 흉흉해도 나는 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가지런해지던 날 나는 책을 묶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은 그때 정해졌고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 책을 이제야 낸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책머리에

가끔 아무런 코멘트가 필요없는 문장들이 있다. 고작 ‘책머리에’에 있는 짧은 문단을 며칠 동안 십 수 번 반복해서 읽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김현 선생의 <한국문학의 위상>은 내가 책상 앞에 늘 꽂아두는 책 중 유일한 문학평론집이었지만, 이제 신형철의 첫 평론집이 곧 추가될 것이므로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읽고 생각하고 소감을 남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