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2006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Sunday, September 24th, 2006

캐스팅 얘기부터 해야겠다. 영화 중반에 문유정(이나영)이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정윤수(강동원)를 초등학교 6학년, 문유정을 대학교 1학년으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이나영을 캐스팅한 것은 실수다. (극히 편파적인 견해이지만) 역시 이미숙 누님게서 정윤수의 ‘누나’로 제격이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밋밋하게 진행된다. 수려한 외모의 두 배우가 아니라면 잠들었을지도 모를 정도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진행속도가 빨라지면서 극도로 슬픈 분위기를 조성한다. 진행속도가 빨라지는 부분에서 같이 보러간 여성에게 손수건을 건냈으며(양복을 입고 간 게 다행이었다.), 2~3분 지나자 영화보는데 살짝 지장이 있을 정도로 사방에서 울음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렸다. 일반적으로 대중 로맨스 영화의 미덕이 영화 그 자체보다는 함께 보러간 여성과의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에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비교적 무난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슬픔에 공감해 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행복한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정도 윤수도 그 ‘행복한 시간’이 사형집행과 함께 끝나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정된 이별을 원치 않는 두 사람의 사랑이 이중나선을 그리면서 영화 종반부에서 비극성을 더해주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하지만, 애인이 사형수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다. 함께하는 시간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은 불사신이 아닌 이상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통 이별보다는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찰나의 순간들에 집중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스피노자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고, 연인들은 다시 오지 않을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다. 또한 비록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지만, 수 많은 가슴아픈 이별을 맛보았고 다시 맛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와의 ‘행복한 시간’을 찾아나선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정윤수의 식사장면을 제외하면.

성희롱 예방교육과 조선일보

Thursday, September 14th, 2006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노동부에서 회사에 성희롱 예방교육 실태조사를 나온다고 한다. 이번 주에 나는 본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바쁠 것이다. 얼마나 많은 기업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핟. 난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학교 다닐 때였고, 입사한 뒤에는 받아본 적이 없다.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교재를 쭉 읽어본 적은 있지만(교재는 상대적으로 훌륭하다). 그럼에도 서류상으로는 들은 것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대학교를 같이 다닌 사람들 중에 (생각보다) 꽤 많은 인원이 취직한 이후 여성의 사회진출에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와 유사한 상황들 때문일까? 그러니까, 제도가 뒷받침이 되건 말건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들. (꼰대들이 바뀔 것도 아니고) 그런 현실을 바꾸어야 할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데 뭐가 바뀌겠는가. 그런 생각이 바로 야합이다(하긴, 내 삶이 더 야합이다). 나도 이런 말할 자격이 없긴 하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 나의 꿈은 (한때) 전국수석이었는데, 이유는 ‘과외나 학원은 안 다녔구요, 학교수업에 충실했어요.’라는 획일적인 수석합격자 인터뷰에 일침을 가하고 싶어서였다. 대학에 와서는 ‘비록 수석은 못했지만, 언젠가 신문에 인터뷰를 할 정도의 거물이 되면 조선일보의 인터뷰는 절대 거절해줄테다!’라고 결심했었다(아, 나도 유명 블로거였다면 현실로 이룰 수도 있었는데!). 그런데! 지난 주에 조선일보에 사진이 나왔다. 이 블로그에 오는 사람들의 집합과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의 교집합은 조선일보를 아예 보지 않는 사람들의 집합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므로 보신 분을 없으리라 믿는다. 기사와 관련이 있는 사진의 배경으로 찍혔던 것 뿐이니까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긴 한데, 조선일보라서 웬지 기분나쁘다. 오랜만에 후배들한테 전화와 메시지가 많이 오니까 기분은 좋았지만 말이다(선배나 동기들은 대체로 조선일보 안 보는 사람들이다). 어쨌든 조선일보에 데뷔했으니 나도 야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근데 왜 실렸나고? 그야 잘 생겼으니까. 나로 인해 조선일보의 판매량이 증가했을테니 확실히 야합이다.

마지막 세 문장은 농담이예요. 돌은 던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