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학기임에도 불구하고 21학점이나 되는 학점을 이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엄습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직접 써보니 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설마 내 지인들에게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2학기를 제대로 보내려면 술을 반드시 줄여야 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은 적중할 것 같다. 대학국어를 신청하기 위해 콧대높은 국문과 조교들에게 사정해야 할 생각을 하니 끔찍하고, 9월 달 달력을 가득 매운 취업설명회도 만만치 않게 끔찍해 보인다.
학교에 가보니 과방을 다시 옮겼더라. 넓어졌으니 후배님들은 좋아하겠지만, 이제 내가 입학할 때 쓰던 그 과방이 아니다. 초고학번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드나들었던 과방도 이제는 가기가 좀 부담스러운 느낌. 개강잔치도 참석하기에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이 경우에는 일단 내가 재미가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렇다고 개강잔치없이 개강을 한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것 같고… 고학번 개강잔치나 추진해볼까? -_-;
만감이 교차하는… 개강 전야.
2002년 내가 군에 입대했을 때 나는 24살이었고, 나와 동갑인 사람들은 이미 전역했거나 대부분 말년병장이었다. 내 동기들은 모두 나보다 두 살 이상 어렸고, 선임 중에서는 동갑이 한 명 있었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자기 누나 혹은 형과 비슷한 나이인 나를 성폭력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적어도 우리 소대에는 없었다. 내 선임과 동기들의 옷 속으로 손을 넣고 온 몸을 더듬던 일명 ‘변태 병장’도 나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내가 ‘변태 병장’의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것에는 명문대에 재학중이라는 사실도 작용했다고 하니, 이등병이던 시절에도 나는 이 놈의 학교덕을 본 셈이다.
전역하기 서너달 전에 다른 대대에서 사고를 치고 전역하게 된 중사 한 명이 우리 부대로 전입을 왔다. 나는 이미 상병 때 대위인 인사과장에게 성희롱이라며 빠득빠득 개긴 전과가 있었다. 인사과장은 경우에 따라서 장난으로 봐 줄 수 있다고 쳐도 이 놈은 아니다. 안마를 시키길래 그냥 꾹 참고 하라는대로 했는데, 갈수록 심해져서 나중에는 뒤에서 자기를 안아달라고 하기도 하고 자기 가슴을 좀 만져보라고 하기도 하고… 그랬다. 어느 날 뒤에서 껴안아보라고 하길래 거부했더니 내 두 손을 붙잡고 강제로 자기가 원하는 포즈를 만드는 것이다. 이때는 정말이지 너무 무서워서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도망갔다. 부하를 잘 둔 덕에 인사과장 사건 때 중재를 했던 작전장교가 또 흡연실로 찾아와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고, 결국 중사가 나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일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그 중사가 전역할 때까지 나는 항상 불안했고 두려웠다.
이채님의 포스트로 미루어 볼 때, mi-ring 블로그에 이 주제를 제안할 때 이채님은 생존자 말하기 대회와 비슷한 위상의 것을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애초에 내 경험에 대해서 침묵한 적이 없고, 인사과장과 중사에게는 극도의 태업을 통해 복수했기 때문에 별로 아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중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주었던 그 불안함과 두려움이 아마도 생존자들이 치유하고 싶어하는 고통스러운 기억들과 유사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것을 처음 경험했던 새내기 시절에도, 성폭력 사건에 실제로 관여했던 2000년에도 내가 직접 경험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한 이후에 나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당신과 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 개연성을 믿는 것이 개자식을 격퇴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가입을 미뤄왔던 것은 규약을 읽기가 귀찮기 때문이었는데, 규약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_-; 그런데 8월의 두 번째 주제인 ‘성추행하는 개자식 격퇴하기’는 ‘언니‘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가? 빈도는 희박하지만 남성(가해자)-남성(피해자), 여성-남성사이에서 읽어나는 성폭력도 존재하는데… 어차피 트랙백을 보낸다 해도 피서 다녀와서 보낼테니 일단 보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