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2005

‘대동제’ 혹은 단지 ‘축제’

Monday, May 23rd, 2005

개인적으로 2005년 봄 축제인 다섯 번째 ‘광합성놀이터’가 마음에 들었다. 축제하는 사람들의 역량이 이제 본 궤도에 오른 것인지 축제는 참신한 아이템들로 넘쳐났다. 특히 Oh! Wall은 탁월한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무려 7년 동안 진행된 김민수 교수의 무학점 연대강의 포스터, 논쟁하는 대동제가 열린 계기가 되었던 미대 만화창작동아리 ‘순간이동’의 만화가 전시되었다. ‘영상’에서는 정치/비정치의 이분법을 넘어 서울대인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출품(?)했고, 스킨스쿠버 동호회가 바다에서 찍어온 사진도 있는가 하면, ‘미동’의 액션페인팅도 있었다. 학내 문예동아리들의 다양한 상상력을 이 정도로 기획해 낸 축제가 있었는가. 물론 ‘Oh! Wall’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관악에도 문화자본의 마수가 조금씩 손을 뻗고 있다는 징후들이 엿보일 뿐더러, 무엇보다 ‘즐거운 축제’를 넘어 대안적 축제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남지만 말이다.

그러나 축제는 낯설었다. 2005년의 ‘축제’는 내가 기억하는 ‘대동제’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내 마음에 가장 들었던 ‘Oh! Wall’은 단지 ‘오월’이라는 이름만으로 대동제와의 괴리감을 불러 일으켰다. 메이퀸과 쌍쌍파티로 대변되는 70년대에서 80년대 초의 대학축제가 사라지고 ‘대동제’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광주 민중항쟁 이후의 일이다. 80년대의 야만이 시작된 피의 광주에서 죽어간 그/녀들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산 자여 따르라‘고 외쳤던 새로운 축제가 바로 ‘대동제’다. 5월 18일이 낀 주에 (거의) 모든 대학의 봄 축제가 시작되는 것도 ‘대동제’의 기원이 80년 광주에 있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 할 자가 화수분처럼 줄지 않는 29만원에 의지하여 호위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3일 간의 축제기간 동안 ‘5·18′ 단 세 글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80년대가 아니고 90년대도 아닌 무려 2005년. 분명 이십오년전의 오늘은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지만, (물론 나도 기억은 없지만,) 80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87년에도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2005년의 대학생들에게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오년전의 광주를 기억하는 것조차 힘겨운 시대다. 그러나 힘겹지만 기억하는 한 희망은 있지 않을까 싶다. 단지 쉽게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대동제’가 사라졌을 뿐이다.

재미없다고 소문난 관악의 ‘대동제’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희망은 다른데 가서 찾고) 재미있는 서울대의 ‘축제’를 즐기면 된다.

덧붙임 : 유가협 장터에서 박종철 열사 아버님께 인사를 드렸다. 3년 전에는 몸이 좀 편찮으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건강은 괜찮으시다고 한다. 실제로 정정해 보였다.

‘저희 나라’와 ‘우리 애인’

Friday, May 13th, 2005

수업시간에 보면 ‘우리나라’를 ‘저희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도 많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귀에 거슬릴 정도로 ‘저희 나라’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빈도가 높다. 강의실을 나온다고 해도 비슷한 상황은 계속된다. 자기 애인을 ‘우리 ○○’라고 말하는 지인들이 있는 까닭이다. 이봐! 그/녀는 나의 애인이 아니라고.

모든 것은 1인칭 대명사와 관련된 문제이다. 일반언어학적 관점에서 1인칭 대명사를 구분하는 방법중에는 청자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inclusive we’)와 청자를 포함하는 경우(’exclusive we’)로 구분한다. 독일어, 영어와 같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들과 한국어에는 이런 구분이 없다. 중국어와 일본어, 만주어, 타밀어 등에 이러한 용법이 있다고 한다. 구분이 없다면 골치아플 일이 없을 터인데, 사실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한국어에는 존대법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에는 ‘나, 우리’ 외에도 ‘저, 저희’라는 화자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인칭 지시어가 존재한다. 청자가 포함된 1인칭 복수에서 겸양의 인칭 지시어를 사용할 수는 없으므로, inclusive/exclusive와 비슷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사실 ‘저희 나라’의 경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말의 1인칭 대명사는 ‘겸양’을 통해 청자에 대한 ‘존대’를 표현하기 때문에, 아무리 존대를 하고 싶어서 같은 나라 사람끼리는 존대를 할 수가 없다. 다른 나라 사람과 한국어로 이야기할 상황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 전체가 그 사람에게 존대를 해야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면 ‘저희 나라’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우리’를 exclusive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서, ‘우리 ○○’라는 말이 귀에 상당히 거슬린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인데,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분개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분개할 일은 맞지만 객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결국 열흘만의 포스팅은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May Day, mayday.

Sunday, May 1st, 2005

군대에서 보낸 지난 두 번의 노동절. 뉴스화면으로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2005년의 메이데이를 기다려왔다.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이 무더위 속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그렇게 기다렸던 2005년의 노동절에 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115주년 노동절보다는 모레 있을 시험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은, 졸업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는 학부 5학년. 그게 나. 잠시 발끈해지기도 하지만, 존재에 대한 비애감만 느낄 뿐.

그래서 조난신호를 보낸다. Mayday, mayday, mayday.

구하러 올 필요는 없고, 졸업한 뒤에 다시 만납시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