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2004

쓸쓸함

Monday, October 4th, 2004

수업을 마치고 셔틀버스를 타려고 학생회관 앞을 지나고 있는데, '제 2도서관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학우가 나에게 다가온다. 별로 관심이 없어서 정중히 거절하고 지나는 데, 앰프를 통해 목소리가 들려온다. 국가보안법 철폐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가판으로 가서 서명을 했다.

수고하시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뒤돌아서는데, 앰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온다. '학우 여러분,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국가보안법 철폐 서명에 함께해 주세요.' 국가보안법 철폐 정도의 이슈면 한 두명쯤 서명을 할 만도 한데, 벌써 다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관심없이 지나치는 것인지 가판대를 썰렁하다. 담배를 한 대 꺼내물고 학생회관 벽에 기대어 물끄러미 마이크를 통해 서명을 '구걸'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담배를 다 피운뒤, 다시 발걸음을 옮길 때가지 마이크를 들고 있는 그 분은 국가보안법이 왜 나쁜 것인지, 왜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학생회관 앞 작은 공터에는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그 무엇과도 공명하지 않는 듯 했다. 단지 공기중으로 흩어지는 음파일 뿐.

그가 왜 아무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서명을 하라고만 외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바깥 세상만큼이나 각박해진 대학에서 이제 많은 이가 정치적 입장을 가진다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설마!)다양한 정치적 입장들이 과도하게 충돌해서 평행선만이 존재하는 상황이 되어버린걸까? 아니면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정치적 이슈를 이야기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서명만을 받기위해 그곳에 앉아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 학생회관 앞에서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