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ugust, 2004

노'약'자

Wednesday, August 25th, 2004

지하철에도 버스에도 노약자석은 있다. 한 번도 국어사전을 찾아본 적은 없지만 ‘노약자’라고 함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땀흘려 노동하고 이제는 은퇴를 앞둔, 혹은 은퇴한 시니어들과 아직 혼자 설 힘이 없는 어린아이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비해 다소 힘이 없거나 몸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의미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지하철에서는 자리가 많이 남지 않으면 거의 안 남는 편이고, 버스에서는 피곤할 때 가끔 앉는다. 물론 어느 경우에도 노약자석에는 앉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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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성 같이쓰기

Monday, August 9th, 2004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내가 속한 인문대에서는 성폭력 사건으로 자퇴를 하는 일이 있었고, 학교는 거의 두 달 동안 논쟁의 도가니였다. 수없이 나붙은 대자보들 속에서 나는 이름이 세 글자인 사람들이 무척 많구나하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부모성을 같이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되고 좀 더 이해가 풍부해졌지만 그리고 대체로 그 의의에 동의하지만 나는 부모성을 같이 쓰지 않는다.

난 가족이 정말 몸서리치게 싫을 때가 있다. ‘가족’이나 ‘피붙이’라는 이름으로 내 생각을 억누르려 할 때, 내 장래를 객관식으로 제시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당신들 맘대로 재단하고 내 기타를 몰래 팔았을 때 나는 항상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논리는 언제나 똑같다. ‘우리 가족에 불화를 가져오지 마라.’ 내가 엄마, 아빠의 말에 순응함으로써 우리 가족은 혈연공동체로써 다시금 다져진다. 평화를 가장한 불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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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기

Monday, August 9th, 2004

지난 주인가? 샌들을 하나 샀다. 군대에서 왼쪽 엄지발톱이 깨지고 안에서 피가 고인 관계로 샌들을 신을 계획이 없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나았기 때문이다. 아직 동네에서만 신고 있지만 말이다.

도보로 왕복 40분이 걸리는 할머니댁에 반찬을 가져다 드리러 갔다와서 샤워를 하는데 발이 온통 피다. 오늘이 두 번째 샌들을 신은 날. 그나저나 걸어오면서 계속 몰랐다니, 이 둔감함이란! 발이 까지고 상처가 생긱고 피가 조금 나기로 서니, 그렇다고 안 신으면 평생 못 신는다. 내 발 사이즈에 딱 맞추어 산 샌들도 길을 들여야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삶도 그런 것 같다. 마음이 아프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때 서로를 길들일 수 있는 것일진대, 나는 내가 상처받고 내 마음의 성벽이 조금이라도 허물어지는 것이 싫어서 언제나 길들이기를 포기했었다. 물론, 나도 길들여지지 않았고. 독불장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인간관계가 별 볼 일 있을리 없다.

누구나 문 앞까지는 갈 수 있다. 문제는 부끄러움과 낯설음을 견디고 이질감을 가져다 줄 새 세계로의 문을 여느냐, 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