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도 버스에도 노약자석은 있다. 한 번도 국어사전을 찾아본 적은 없지만 ‘노약자’라고 함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땀흘려 노동하고 이제는 은퇴를 앞둔, 혹은 은퇴한 시니어들과 아직 혼자 설 힘이 없는 어린아이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비해 다소 힘이 없거나 몸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의미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지하철에서는 자리가 많이 남지 않으면 거의 안 남는 편이고, 버스에서는 피곤할 때 가끔 앉는다. 물론 어느 경우에도 노약자석에는 앉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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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문 앞에 도달했었다. 부끄러움과 낯설음은 이겨냈지만, 나는 이번에도 문을 열지 못했다. 무척 오랜만에 관계의 문을 열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근 이주일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보냈었는데, 정작 상대방은 자신의 발톱이 나에게 상처를 남길까 두려웠나 보다. 애석하게도 그 사람의 착한 생각과는 달리, 사실 그런 상처는 물론이고 더한 상처조차도 이제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나에게 내 앞에 존재하는 것은 이제 문이 아닌 거울이었고, 그래서 그냥 돌아서야만 했다. 문은 열고 들어갈 수 있지만, 거울은 깨고 들어가야만 하지 않는가. 그럴수야 없는 일이지. 적어도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돌아섰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상처를 받지도 남기지도 않지만, 자신의 상처 또한 결코 치유되지도 않는다. 상처를 입기 두려워하는 영혼이 어찌 자신의 상처를 아물게 하리오. 어쨌든 이 소심함과 배려와 자기애가 바람직한 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 마음의 이 평온… 지독한 자기애를 벗어던지고 이제 나와 당신을 동등하게 아낄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 그것만으로도 지난 이주일간 계속된 나의 ‘한여름 밤의 꿈’은 같은 이름의 셰익스피어의 희곡만큼이나 해피엔딩이다.
It was all yellow. 그건 모두 겁많은(소심한) 짓이었어.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내가 속한 인문대에서는 성폭력 사건으로 자퇴를 하는 일이 있었고, 학교는 거의 두 달 동안 논쟁의 도가니였다. 수없이 나붙은 대자보들 속에서 나는 이름이 세 글자인 사람들이 무척 많구나하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부모성을 같이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되고 좀 더 이해가 풍부해졌지만 그리고 대체로 그 의의에 동의하지만 나는 부모성을 같이 쓰지 않는다.
난 가족이 정말 몸서리치게 싫을 때가 있다. ‘가족’이나 ‘피붙이’라는 이름으로 내 생각을 억누르려 할 때, 내 장래를 객관식으로 제시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당신들 맘대로 재단하고 내 기타를 몰래 팔았을 때 나는 항상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논리는 언제나 똑같다. ‘우리 가족에 불화를 가져오지 마라.’ 내가 엄마, 아빠의 말에 순응함으로써 우리 가족은 혈연공동체로써 다시금 다져진다. 평화를 가장한 불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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