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마초는…
배운 마초이다.
배워서, 자기 방어에 철두철미한 마초.
자신이 여전히 옳다고 믿고 있기에
무서우리만큼 용감하게 폭력적인
이를테면 김규항이라든가
우리 가까이에
각 과/반에 존재하는
유명한 마초들.
머리는 왜 달고 있냐?
자기성찰이란 할 줄 모르는 마초들.
자신의 행동이
사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죽어도 인정하려하지 않는 마초들.
난 그대들이 단순무식개마초들보다도 싫다.
적어도 그런 마초들은
애초에 기대가 없으며
의외로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이 가능할 때가 있다.
배운 마초들이여,
배움으로인해 마초성이 백만배 증가되는
영원불멸히 자신들의 권력을 누리고픈
최악의 마초들이여.
페미니즘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가?
그것이 또 하나의 멋진 라벨링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정말 몰라서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진심으로 충고하건데
일단 닥치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라.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라.
그녀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참을성도 없으면서
잘난 척, 착한 척 하지 말란 말이다.
닥치고, 들어라.
『if』2004년 겨울호를 읽는데,「진보마초를 해부하라!」라는 기획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진보마초'와 같은 류의 어휘들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김규항씨의 「그 페미니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른바, '박근혜 연대론'이 언급되던 상황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수긍은 되지만, 이후에 진행된 논쟁들을 바라보면서 이 'B급 좌파'에 약간의 실망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세상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말 '교묘한 마초'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도무지 대책이 없는 '꼴통마초'야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색깔이 불분명해서 '마초'로 매도하는 것은 좀 애매한 그런 인종들이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정말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사람이 두 달 정도 지나고보니 꼴 '보수마초'였던 경험도 있다. 그 사람 참… 파악하기 어려웠다.
내가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주 가부장적인 우리 집 덕택이다. 조선시대 말기,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아흔아홉칸 저택에 살던 나의 훌륭한 조상님들 덕택에 나는 음복을 한 뒤에 빈 그릇이라도 부엌에 가져다드리면 큰아버지 이하 사촌형들한테 일단 혼나고, 큰어머니 이하 형수님들한테 다시 혼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알고보면, 내 여동생을 끔찍히도 좋아하는 우리 할머니는 내가 수능볼 때는 절에서 100일 기도 밖에 안 했으면서 동생 고3때는 1년 동안 매일 절에서 기도를 하셨다. 내 동생이 수능을 앞두고 막판 정리에 힘쓰고 있을 무렵에 엄마와 아빠가 기도하다가 쓰러진 할머니를 보러 절에 내려가셨던 적도 있다. 그러나 '가시나'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쪽팔리다고 생각하는 우리 할머니의 생각 덕분에 할머니의 마음을 내 동생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이런 내 개인적 경험들 때문에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여성학 수업을 들었고, 지금까지도 틈틈히 이것저것 생각하며 실천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 역시 색깔이 불분명한 회색마초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기획기사에는 '10가지 유형별 진보마초'를 제시하고 있는데, 나에게 꼭 맞는 케이스는 없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평소에는 여성에게 우호적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성차별적 의식을 드러내는 마초 로맨티스트'와 '페미니스트에 전술적으로 합류한 마초 생존기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마초 매저키스트 정신분열형'의 성격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오프라인에서만 한정시켜 이야기한다면, 내 주위의 여성들은 그녀들이 생각하는 평균적인 남성에 비해 덜 마초적인 남성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욱 의구심이 든다. '과연 그럴까?'라는. 결혼하면 공동육아와 공동가사노동을 반드시 하겠지만 빨래는 죽어도 못하겠다든가, 몸매나 얼굴 또는 재력과 같은 것이 여성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여성의 지적수준을 어느샌가 판단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다. 물론, 군대라는 공간이 남긴 트라우마도 대단하고. 사실, 무섭도록 마초적이 된 나의 모습에 지난 여름에 많은 고민을 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내 현실을 바라보고 조금씩 나아지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현실을 밟고 앞을 바라본다면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녀들이 몸으로 언어로 전달하는 메시지들을 조금 더 열심히 들어주는 것. 그리고 내 생각 역시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무엇보다 이해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교류하는 것. 이런 것들 조금씩 하다보면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
덧붙임 하나 : '최악의 마초는…'이라는 글은 후배의 미니홈피에서 예전에 퍼왔던 글이다. 이글루 블로그를 삭제한 관계로 마침 비슷한 내용이어서 이 엔트리에 옮겨둔다.
덧붙임 둘 : 그런 의미 마지막 부분과 통한다는 점에서 블로걸 프로젝트에 뒤늦은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