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性壁’ Category

호주제

Thursday, February 3rd, 2005

가디록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호주제가 헌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호주제에 대해서 bean과 이야기하다가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결혼식장에서 식 다 끝나고 하객들한테 인사할 때 '저는 제 아내가 된 여성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래서 결혼신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제 호적에 입적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같은 말을 해버려.

bean의 의도는 아마도 호주제 신경쓰면 결혼도 못할꺼다…라는 것이었겠지만, 나는 속으로 '오~'라고 외치며 가슴에 깊이 새겨두었었다.

아직 호주제가 폐지된 것도 아니고, 호주제가 폐지되어도 그건 단지 '정상가족'-그렇지 않은 부류의 가족들을 은연중에 '비정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이 용어는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게다. 가족으로서의 정체성조차 법적으로 부여받지 못하는 가족들은 호주제 폐지 이후에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단지 염색체때문에 호주제의 직접적인 피해자 혹은 잠재적 피해자였을 여성들에게도 그렇겠거니와, 유령처럼 우리를 배회하는 구제도에서 벗어나 좀 더 민주적이고 동등한 가족관계를 꿈꿀 수 있게된 남성들에게도 환영할 만할 일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아울러, '족보도 없는 나라'를 걱정하는 유림분들이 단식을 시작하시면 농성장에 가서 쌈밥이라도 한 입 넣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메롱. ㅋㅋ

진보마초

Wednesday, January 12th, 2005

최악의 마초는…
배운 마초이다.
배워서, 자기 방어에 철두철미한 마초.
자신이 여전히 옳다고 믿고 있기에
무서우리만큼 용감하게 폭력적인
이를테면 김규항이라든가
우리 가까이에
각 과/반에 존재하는
유명한 마초들.

머리는 왜 달고 있냐?
자기성찰이란 할 줄 모르는 마초들.
자신의 행동이
사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죽어도 인정하려하지 않는 마초들.

난 그대들이 단순무식개마초들보다도 싫다.
적어도 그런 마초들은
애초에 기대가 없으며
의외로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이 가능할 때가 있다.
배운 마초들이여,
배움으로인해 마초성이 백만배 증가되는
영원불멸히 자신들의 권력을 누리고픈
최악의 마초들이여.

페미니즘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가?
그것이 또 하나의 멋진 라벨링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정말 몰라서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진심으로 충고하건데
일단 닥치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라.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라.
그녀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참을성도 없으면서
잘난 척, 착한 척 하지 말란 말이다.

닥치고, 들어라.

『if』2004년 겨울호를 읽는데,「진보마초를 해부하라!」라는 기획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진보마초'와 같은 류의 어휘들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김규항씨의 「그 페미니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른바, '박근혜 연대론'이 언급되던 상황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수긍은 되지만, 이후에 진행된 논쟁들을 바라보면서 이 'B급 좌파'에 약간의 실망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세상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말 '교묘한 마초'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도무지 대책이 없는 '꼴통마초'야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색깔이 불분명해서 '마초'로 매도하는 것은 좀 애매한 그런 인종들이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정말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사람이 두 달 정도 지나고보니 꼴 '보수마초'였던 경험도 있다. 그 사람 참… 파악하기 어려웠다.

내가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주 가부장적인 우리 집 덕택이다. 조선시대 말기,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아흔아홉칸 저택에 살던 나의 훌륭한 조상님들 덕택에 나는 음복을 한 뒤에 빈 그릇이라도 부엌에 가져다드리면 큰아버지 이하 사촌형들한테 일단 혼나고, 큰어머니 이하 형수님들한테 다시 혼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알고보면, 내 여동생을 끔찍히도 좋아하는 우리 할머니는 내가 수능볼 때는 절에서 100일 기도 밖에 안 했으면서 동생 고3때는 1년 동안 매일 절에서 기도를 하셨다. 내 동생이 수능을 앞두고 막판 정리에 힘쓰고 있을 무렵에 엄마와 아빠가 기도하다가 쓰러진 할머니를 보러 절에 내려가셨던 적도 있다. 그러나 '가시나'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쪽팔리다고 생각하는 우리 할머니의 생각 덕분에 할머니의 마음을 내 동생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이런 내 개인적 경험들 때문에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여성학 수업을 들었고, 지금까지도 틈틈히 이것저것 생각하며 실천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 역시 색깔이 불분명한 회색마초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기획기사에는 '10가지 유형별 진보마초'를 제시하고 있는데, 나에게 꼭 맞는 케이스는 없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평소에는 여성에게 우호적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성차별적 의식을 드러내는 마초 로맨티스트'와 '페미니스트에 전술적으로 합류한 마초 생존기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마초 매저키스트 정신분열형'의 성격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오프라인에서만 한정시켜 이야기한다면, 내 주위의 여성들은 그녀들이 생각하는 평균적인 남성에 비해 덜 마초적인 남성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욱 의구심이 든다. '과연 그럴까?'라는. 결혼하면 공동육아와 공동가사노동을 반드시 하겠지만 빨래는 죽어도 못하겠다든가, 몸매나 얼굴 또는 재력과 같은 것이 여성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여성의 지적수준을 어느샌가 판단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다. 물론, 군대라는 공간이 남긴 트라우마도 대단하고. 사실, 무섭도록 마초적이 된 나의 모습에 지난 여름에 많은 고민을 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내 현실을 바라보고 조금씩 나아지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현실을 밟고 앞을 바라본다면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녀들이 몸으로 언어로 전달하는 메시지들을 조금 더 열심히 들어주는 것. 그리고 내 생각 역시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무엇보다 이해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교류하는 것. 이런 것들 조금씩 하다보면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

덧붙임 하나 : '최악의 마초는…'이라는 글은 후배의 미니홈피에서 예전에 퍼왔던 글이다. 이글루 블로그를 삭제한 관계로 마침 비슷한 내용이어서 이 엔트리에 옮겨둔다.

덧붙임 둘 : 그런 의미 마지막 부분과 통한다는 점에서 블로걸 프로젝트에 뒤늦은 지지를 보낸다.

No Pity. No Shame. No Silence.

Wednesday, January 12th, 2005

misia원문 읽기

이 포스트는 위에 언급한 글에 대한 번역이다. 해석은 어느 정도 되는데, 번역이라는 것이 해석과는 전혀 다른 범주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어를 좀 잘하시는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오역을 지적해주시면 좋겠다. 너무나 인상적인 글이라서 많은 이들과 함께 읽고 싶어서 안 되는 실력으로 변역을 해 보았다. (칭찬 좀 해 달라 –;)

No Pity. No Shame. No Silence.
내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 몇 주 전에 성폭행당한 뒤로 나는 성폭력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떻게 금지되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

가장 최근만 살펴보더라도 내 주위에서 성폭행을 감내하고 그 여파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그 친구가 처음은 아니다. 성폭력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산산조각난 뒤에 물을 다시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원하면서 인생이라는 그릇을 어떻게 다시 붙일 지 알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도 그녀가 처음은 아니다.

다른 친구들이 성폭행 혹은 다른 성범죄에 희생되었던 과거의 매우 많은 시간들 동안 항상 함께 있었기에, 나는 상황을 좀 더 호전시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또한 내가 성폭력을 되돌리거나 막거나 또는 더 쉽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밖으로 나가 그녀가 혼자가 아니며, 우리와 같은 사람이 바로 여기에 함께 있다는 것, 그녀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성폭력으로부터 생존한 사람이고, 우리는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샤워를 하는 중에도 나는 얼마나 많은 지인들-여성, 남성, 트랜스포크 등등-이 각자의 과거에서 어딘가에서 어떤 종류인가의 성폭력을 경험했을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또, 얼마나 많은 다른 지인들의 미래에 어떤 종류의 성폭력이 숨어있을 지에 대해서 의심스러웠다.

나는 어떨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만약 어느날 모든 사람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이 생존자로서 세상에 나타난다면. 만약 우리가 진실로 생존자의 규모를 알 수 있다면. 만약 우리 모두가 정말 어떻게 혼자가 아닐 수 있는 지를 알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화가 나고 슬퍼해야 할 지 생각했다. 또 진실에는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한 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이 일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 지 느끼고 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동의한다면 다른 이들이 그들 스스로를 밝힘으로써 격려해 줄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기록으로써-무슨 일이 있었는 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좋아하고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 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관음증 적인 호기심이 불편하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세세한 것들까지 이야기할 지에 대해서 그들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매우 크고, 어두운 비밀로 유지되는 무언가에 관해 대중적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이런 종류의 것들이 당.신.과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척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당신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믿어줘. 나는 알고 있어.

나는 Hanne. 성폭력의 생존자
동정도, 부끄러움도, 침묵도 필요없어.

남성 또래집단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몸매에 대한 서열화, 외모에 의한 타자화 같은 것들에 대해서 나는 어쩌면 공범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얼마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대학 입학 직후에 성폭력 사건이 공개되고 가해자가 자퇴한 사건이 벌어졌다. 잊혀질 때쯤 되면 다시 인문대 광장에 나붙는 '성폭력 사건을 공개합니다'는 내 대학생활 내내 익숙한 광경이다. 내가 군대에 있는 사이 여자 동기들은 취직을 했고, 성적 모멸감을 느끼며 점점 아마조네스화 되어 가고 있다. 그녀들이 그러는 동안에 나는 군대에서 다시 한 번 중고등학교 때 느꼈던 견고한 남성성의 벽을 느꼈다. 이번에도 나는 공범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겠다.

덧붙임 : 트랜스포크(transfolks)가 뭐죠? 동성애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