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활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
또 성폭력이다. 그리고 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연대의 조건', '서울대', '성폭력의 일상성'이다. '연대의 조건'부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1. 연대의 조건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멕시코 치아파스 마을의 어느 원주민 여성)
나는 98, 99, 00년에 농활을 갔었다. 난 농활을 좋아했다. 이슬이 걷히지 않은 흙길을 걸어, 삶의 무게를 이마의 주름으로 증명하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인사하고 아침부터 일을 나가서 보람차게 일을 하고 저녁엔 농민들과 대화하고… 얼마나 새로운 경험이야. 문제는 그냥 그렇게 새로운 경험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농활은 '농촌봉사활동'이 아니고, '농민학생연대활동'이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경험한 농활에는 '연대'는 없고, '봉사'만 있다. '연대'하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잘 안 됐고, 난 '봉사'를 즐겼을 뿐이다. 그 편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테니까.
연대는 입장의 동일함에서 시작한다. 입장의 동일함이라, 농활에선 꿈이다. 그리고 솔직히 농민해방이 그다지 와 닿지도 않는다. 연세가 많으신 노인분들은 그 마을에서 육십년 이상을 사신 분들이다. 젊은 사람들도 도시로 가지 않고 어릴 때부터 마을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그 공간에 '서울'에서 온 '젊은' 대학생들이 난입하는 것이다. 그건 난입이 맞다. 그들에게 농촌과 다른 문화를 가진 서울에서, 당신들과 사고방식이 다를 것이 뻔한 젊은이들이 마을에 오는 것은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일 끝나고 술 한잔 하려고 할 때도 소주, 맥주, 막걸리를 다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우리가 농활에 들어가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농민회에게 듣는 것이라고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서울에서 학생들 봉사활동 와요. 일 많이 시켜주세요. 유인물같은 거 주면 한 번 읽어 보시구요.'가 고작이다. 마을분들과의 연대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우리는 돈 안 주고 쓸 수 있는 훌륭한 노동력이고 '학생들이 공부도 포기하고 우리를 도와주러 오는구나. 기특하구나.', 이거다.
결국 진정한 '연대'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농민회나 청년회에서 술 싸들고 오면 그 때부터 시작된다. 사실 농촌의 문제가 좀 심각한가? 술 좀 먹다보면 많이 먹는다. 그냥 우리 숙소에서도 잔다. 전혀 문제가 없다. 여학우들의 숙소는 대개 따로 있는 걸. 문제는 술 마시면서 벌어지는 언어폭력의 향연. 실제로 우리 농활대도 두 번이나 철수논의를 심각하게 진행했었다. 그래서 농민회에 우리 생각을 말하면 '농촌에선 원래 그런 농담해'라고 한다. 결국 '연대'는 허울일 뿐이다. 농민회나 청년회에 소속된 이들이 더 심하다. 적어도 농민들은 사고방식이 구식일 뿐이지만, 이 사람들은 마초다. 그것도 다른 이유를 내세워 마초임을 합리화하는 악질 마초. 이들에게 우리는 농민해방과 연결되어 있지만, 자신들은 여성해방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결국 입장의 동일함은 사라지고, 허울좋은 연대의 껍데기만 남는다. 연대의 조건이 맞지 않는 것이다. 남은 농활기간을 보내고 서울에 와서 이런저런 평가를 한다. 평가는 평가로 끝이다. 다음 해에 관성적으로 농활을 간다. 내가 농활을 가던 그 시절에 '농활을 더 이상 가는 게 의미가 있느냐'라는 논의가 되기 시작했었는 데 그 때 없어졌어야 했다. 그리고, 농민과 학생의 연대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2. '서울대'라는 뉴스거리
전국의 대학 중에 가장 많은 기자가 상주하는 곳이 서울대이다. 총학생회장 정도 되면 신문사/방송사별로 명함 한 두장씩은 가지고 있다 왜냐? 뉴스가 되거든. 입시관련해서만 뉴스가 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다 하는 설문조사도 뉴스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라는 이름이 차지하는 권력때문이겠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울대를 없애라고 말하고 싶고, 다음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이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을 포스팅 해 보려고 한다.
3. 성폭력의 일상성
뉴스기사에 달린 코멘트를 보면 '별 거 아닌거 가지고'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 데, 그렇다.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니다. 상대방은 수치심에 몸서리치고 있지만, 별 거 아니다. 매일 같이 성폭력에 노출되지만, 뭐 어때 별 거 아닌데. 남 얘기라고 막 하는 게 아니라고 배웠는데… '별 거 아닌데' 막말하는 그 입을 꼬매볼까?
술 먹으면서 여성을 안주거리로 삼는 게 버릇이 된 것들이 '별 거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내 동생은 학교 다닐 때 농활 한 번 간 적 없고, 당신들 말대로 '여성스럽고', 페미니스트도 아니지만, 회식하는 날이면 몸을 부르르 떨면서 들어온다. 나도 100% 안 그랬다고는 말 못한다. 그러나 나와 내 주변을 고치기 위해 노력은 계속 하려고 하고 있다. 어쨌든 사건이 이렇게 시끌벅적해지면, 피해자는 한 이백만 번 쯤 상처받겠다. 우리나라에 '피해자 중심주의'란 없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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