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성 같이쓰기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내가 속한 인문대에서는 성폭력 사건으로 자퇴를 하는 일이 있었고, 학교는 거의 두 달 동안 논쟁의 도가니였다. 수없이 나붙은 대자보들 속에서 나는 이름이 세 글자인 사람들이 무척 많구나하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부모성을 같이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되고 좀 더 이해가 풍부해졌지만 그리고 대체로 그 의의에 동의하지만 나는 부모성을 같이 쓰지 않는다.

난 가족이 정말 몸서리치게 싫을 때가 있다. ‘가족’이나 ‘피붙이’라는 이름으로 내 생각을 억누르려 할 때, 내 장래를 객관식으로 제시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당신들 맘대로 재단하고 내 기타를 몰래 팔았을 때 나는 항상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논리는 언제나 똑같다. ‘우리 가족에 불화를 가져오지 마라.’ 내가 엄마, 아빠의 말에 순응함으로써 우리 가족은 혈연공동체로써 다시금 다져진다. 평화를 가장한 불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 우리 아빠는 나에게 선택의 신중함과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자신과 꼭 닮은 내 (못생긴, 그래도 나 스스로는 매력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얼굴을 주셨다. 엄마는 나에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에 대해서 알려주셨고, 동시에 나이가 먹어서도 새로이 꿈을 찾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계신다. 동생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되는 지를 직접 행함으로써 알려준다. 그래서 난 내 가족이 좋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들이고, 단지 나와 생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만약 인간적으로 맘에 들지 않는다면 언젠가 집에서 뛰쳐나갔을 때 나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는 당연히 부모성을 같이 쓸 이유가 없다. 나는 혈연에서 시작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 모두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내 의사와 관계없이 단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명절 때마다 부계를 계승하는 아들로서의 책임감을 강요받기도 하고.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를 소개할 때 성을 안 붙이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가뭄에 콩나듯이) 아주 공식적인 자리에 나갈 때는 성을 붙여서 소개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름만 해도 큰아빠가 지어주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이름으로 바꾸고 싶지만,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분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아직 참고 있다. 그 대신 나에게는 suksim이라는 온라인의 이름이 있지… (트랙백을 걸은 이지님은 오프라인에서까지 사용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인간적으로나 좋다고 치고, 호주제는 정말 짜증 그 자체다. 나이를 한 살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그렇다. 호주제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과연 내가 아내와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아무리 우리 둘이 지지고 볶고 이쁘게 살아도, 문 밖만 나가면 나는 집 안의 아버지로 규정되는 것을. 그래서 지금은 내가 성을 붙여서 소개해야 될 가능성이 100%가 되는 졸업 이후에는 나는 돌연히 부모성을 같이 쓰게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하고픈 사람이 생기면 청혼을 할 때 진지하게 호주제가 멀쩡히 살아있는 데 결혼을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같이 살 것인지 물어보려고 생각중이다. 이 경우에도 물론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분들은 쓰러지겠지만… –;

덧붙임 : 다 쓰고보니, 전혀 딴 소리같이 되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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