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의 근대사

“민족주의의 역사” 수업에서 내가 속한 조는 '쿠르드족의 민족주의'를 발표주제로 정했다. 내일까지 각자 맡은 부분을 짧게 요약해서 써오기로 했는데, 나는 쿠르드족의 근대사를 맡았었다. 이걸 포스팅하면 누군가 도움이 될지도 모를까해서 올린다. 블로그는 포스트 하나하나가 다 별개의 html로 저장되기 때문에 검색엔진에 걸린다던데… 맞는 지 모르겠다. 근데, 정말이지 쿠르드족 관련자료가 너무 없다. 혹시 누군가가 왜 3번은 그렇게 짧냐고 물으신다면… 졸려서 그렇다.

근대 쿠르드 민족주의 운동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정치적 기득권의 고수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쿠르드 봉건영주들의 저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19세기의 흐름, 둘째는 오스만제국 말기'청년투르크당'에 자극받아 일어난 민족의식 고취운동, 마지막으로 1차 세계대전과 세브르/로잔조약 이후, 본격적인 민족주의 투쟁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 근대 쿠르드 민족주의의 태동
산악지역의 유목민족이라는 문화적 특징과 7세기 이후 피지배민족으로 살아왔던 역사적 배경 속에서 부족단위의 공동체만을 영위하던 쿠르드족에게 있어 19세기는 민족주의가 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 시기이다. 오스만투르크는 17세기 이미 쇠퇴하기 시작하여 18세기에는 그 쇠퇴가 매우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오스만투르크의 쇠퇴를 배경으로 19세기 수 차례의 쿠르드족 반란이 있었으며, 특히 1947년 베디르 칸 Bedir Kahn의 반란은 크게 주목받았다고 한다. 1877년부터 1878년까지 진행된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오스만투르크는 러시아에 패배하였고, 산스테파노 조약을 강요받게 되며, 그 결과 루마니아·세르비아·몬테네크로 등의 지역을 상실하게 된다. 쉐이크 우바이둘라 Sheikh Obaidullah는 1880년 오스만투르크의 보호 아래 이란지역의 쿠르디스탄에 독립 민족국가의 창설을 표방하며 8만 쿠르드군과 함께 마하바드 Mahabad를 점령한다. 이는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로 쿠르드족의 민족주의가 가시화된 동시에 이후 쿠르드 민족주의의 본격적인 탄생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이후 쿠르드군은 우르미아 호수 서안 및 레자이 지역으로까지 진군하나 이란군의 반격과 우바이둘라의 세력화를 염려한 오스만투르크의 지원중단으로 패퇴한다.

2. 민족의식 고취운동
오스만제국의 아브뒬 하미드 2세 Abd-ul-Hamid Ⅱ는 1891년 비정규 기병대인 하미디에 Hamidieh 기병대를 창설한다. 하미디에에 주어진 임무는 두 가지였는데 오스만투르크에 비협조적인 쿠르드족의 통제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의 아르메니아, 앗시리아인 반란세력 평정이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의 충돌을 야기하게 되고, 결국 1894년 사순에서의 대학살을 비롯 1896년까지 도처에서 쿠르드족이 중심이 된 학살극이 자행된다. 또한 하미디에는 1908년 청년투르크당의 반란 당시 술탄의 지지세력으로 일하게 된다. 그럼에도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은 청년 투르크당의 개혁운동에 자극받아 언론매체의 발행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운동을 일으킨다.
1898년 최초의 쿠르드족 신문인「쿠르디스탄」이 창간되었다. 청년투르크당의 반란이 있던 1908년에는 최초의 쿠르드족 정치 클럽이 결성되는 한편,‘쿠르드족의 태양’이라는 뜻을 가진「헤타비 쿠르드 Hetav-i Kurd」신문이 창간되기도 하였다. 1910년에는 쿠르드 학교를 폐쇄하려는 오스만투르크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인텔리겐차를 중심으로 월간지가 발행된다.

3.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희생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쿠르드족
하미디에를 중심으로 쿠르드족은 자치권 확보를 강하게 기대하며 오스만투르크 군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오스만투르크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쿠르디스탄 지역의 자치를 허용한 세브르조약(1920)은 쿠르드족에게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쿠르드 출신의 외교관 샤리프 파샤 Sharif Pasha장군은 19019년 베르사유 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쿠르드인 문제를 의제로 상정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세브르조약의 3개 조항은 쿠르드인이 독립국가를 건설할 근거로서 충분했다. 그러나 새로 구성된 민족주의 터키정부는 세브르조약의 비준을 거부하였으며, 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쿠르드의 편을 들지 않았다. 로잔조약(1923)이 체결되면서 쿠르디스탄 지역은 결국 1차 세계대전 이후 사분오열 되었고, 그 결과 다양한 분리주의 운동이 전개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브리태니커회사(2002),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CD EX
Wikipedia 中「History of the Kurds
이희수(1992),「쿠르드 民族運動의 史的考察 - 1920~30년대 태동기」, 『한국중동학회논총 제13호』
장병옥(1994),「강대국의 대 쿠르드 정책」, 『한국중동학회논총 제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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