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작가의 말 中
확실히 김연수는 ‘소통’에 대해서 노력고민하는 작가다. 사실 김연수에 대한 충성심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가령, 김연수의 블로그는 그의 다음 작품의 소재들로 가득 차 있다. 가령 우리는 그의 다음 단편 혹은 장편에 마이클 잭슨이나 타마테아의 사랑 따위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등장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다만,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소재들이 등장하던 간에 그 속에서 ‘소통’을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그가 천착하는 주제는 ‘소통’이니까. 알래스카의 ‘마리 스미스 존스’ 할머니가 돌아가신 순간(김연수의 블로그에도 포스트가 있지만, 영속성의 측면에서 뉴스에 링크를 단다.)이 김연수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명백하게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인용한 작가의 말을 보면서 뭔가 느낀 바가 있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와의 사랑은 그닥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정작 나와의 사랑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 나 스스로에 대해서는 언젠가부터 용서한 적도 없고, 도움을 구한 적도 없고, 소통하고자 노력한 적도 없다는 명백한 사실. 그로 인해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망가지고 있다는 현실. 소통이란 것이 비단 타자와의 관계로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것. 나는 언제나 나 스스로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고, “나의 마음을 내가 알아”라고 말했던 것을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먼 과거의 얘기다. 그래서, 조금은 ‘나’와의 소통에 집중하려고 한다.
고민이 많다.
10대때, ‘나는 누구인가’란 물음에 답을 얻었던 순간, 그 뒤로 다시 그런 물음을 나에게 던질 일은 없을 줄 알았었어요. 웬걸- 인생의 질풍노도는 언제 끝날련지- (삼)
마지막 문단 몇 줄 완전 공감해요.
@naomi
명함까지 주셨으니, 굳이 사족을 붙이지 않아도 누군지 알아요. ㅋㅋㅋ
@K.
이건 공감하는게 오히려 안 좋은 내용인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