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EU 가입과 쿠르드족의 미래
지난 12월 16, 17일 열린 유럽 정상회의(Europian Council)에서 터키의 EU 가입에 큰 진전이 있었다고 한다. 2005년 10월 3일까지 EU의 가입기준에 걸맞는 개혁을 진행하고 가입논의를 시작한다고 하니 표면상으로는 가입에 상당히 가까워진 셈이다. 터키가 만약 가입한다면 EU에 가입한 최초의 이슬람국가로 남게 된다. 하지만, 터키의 EU가입까지는 많은 난관이 남아있다. 일단 코펜하겐 기준(Copenhagen Criteria)을 충족시켜야 한다. 코펜하겐 기준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유럽연합이 중부유럽과 동유럽국가들의 가입을 전제로 만든 것이다. 이 중 터키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 법치주의, 보편적 인권, 소수자 권리 등의 법제화 여부이다. 그리고, 쿠르드족의 문제는 이 부분에 있어 가장 논란의 대상이다.
1999년 2월, 케냐에서 쿠르디스탄 노동당(PKK)1)의 당수이자 쿠르드족 투쟁의 중심이었던 압둘라 오잘란(Abdullah Öcalan)이 체포된 이후 PKK는 폭력투쟁을 약 3년간 사실상 중단했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잊혀져갔다. 한편, 1999년 헬싱키 유럽 정상회의에서 처음 EU의 가입후보국이 된 이래, 아흐멧 네에뎃 세제르(Ahmet Necdet Sezer)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다. 특히 2002년의 개혁법안에서는 쿠르드족의 문화적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2). 그러나 이것이 쿠르드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터키는 쿠르드 민족의식이 성장하도록 놔둘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터키의 EU 가입에 대한 열망이 쿠르드족에게 대체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가능성이 높지만, 낙관할 수는 없다. 문제는 '쿠르드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쿠르디스탄(Kurdistan)에 있다. 이 지역은 터키동부의 산악지역으로 특히 반(Van)호수는 터키 수자원의 원천이다3). 터키는 1989년부터 이 지역에 무려 22개의 댐과 19개의 수력발전소는 건설하는 아나톨리아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 상황에서 쿠르드족의 독립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자치권조차 터키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EU의 국가들에 있어서도 쿠르드 문제는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중동에서 연결되는 송유관은 모두 쿠르디스탄을 지나야하기 때문이다. EU의 국가들에게 있어 쿠르드족 문제의 해결보다는 쿠르드족을 배제한 이 지역의 배타적 통제권을 획득하는가의 여부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부국강병의 프로젝트에 다름아닌 근대국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논리이다. EU가 코펜하겐 기준에서 제시하고 있는 인권문제가 진정한 인간애의 결과인지 혹은 서구 자유주의의 기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 지속적으로 유럽을 짝사랑해왔고 유럽으로 분류되기를 희망해 왔던 터키의 EU 가입이 일단 가시화된 지금 이 시점에서 쿠르드족은 지금보다 더 많은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U국가라는 이름을 얻는 것보다 설사 같은 투르크족4)은 아닐지언정 같은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터키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