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나를 뒤흔드는 작품들은 절정의 순간에 바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들은 왜 중요한가.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덕분에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이 질문은 본래 윤리학의 질문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몰락은 하나씩의 질문을 낳고 그 질문과 더불어 새로운 윤리학이 창안된다. 그러나 한국어의 ‘윤리학’은 다급한 질문보다는 온화한 정답을, 내면의 부르짖음보다는 외부의 압력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 뉘앙스가 버성겨서 나는 저 말의 라틴어인 ‘에티카’를 가져왔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이 이런 것이라서 그토록 아껴왔거니와, 시정의 의론(議論)들이 아무리 흉흉해도 나는 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가지런해지던 날 나는 책을 묶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은 그때 정해졌고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 책을 이제야 낸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책머리에
가끔 아무런 코멘트가 필요없는 문장들이 있다. 고작 ‘책머리에’에 있는 짧은 문단을 며칠 동안 십 수 번 반복해서 읽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김현 선생의 <한국문학의 위상>은 내가 책상 앞에 늘 꽂아두는 책 중 유일한 문학평론집이었지만, 이제 신형철의 첫 평론집이 곧 추가될 것이므로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읽고 생각하고 소감을 남기겠다.
설 연휴에 집어드셨던 책이로군요. 또한 제목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연유에서 붙여진 제목이군요. 이 책 링크하신 페이지 보고 저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해버렸어요 :)
아무 코멘트가 필요없다는 느낌은 제가 요즘 읽고 있는 기형도 전집에서 받는 것인데, 이렇게 얘기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기형도는 과연 일찍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스스로 만든)이었구나 싶어요. 단편들을 보면 특히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 자살에 대한 것이 옮기신 책머리에서와 같이 일종의 몰락같거든요.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나머지 전부를 포기한 참혹하게 아름다운 몰락이요.
여하튼 얘기가 샜지만 이걸 추천으로 알고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민규나 은희경이나 뭐 이런 것도 궁금하지만 당장으로선 김경주에 대한 평론이 가장 궁금하네요.
제가 가지고 있던 기형도 전집 초판은… 군대갈 때 후배에게 줘 버렸습니다. 때문에 저는 2002년 이후에 기형도를 읽은 적이 없어요. 흙.
기형도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은 필연적으로 시대와의 불화를 겪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와 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예술가들은 의외로 비지니스맨이라뉴. 시대와 불화를 겪는 듯 한 제스처를 보이는 비즈니스맨. 혹은 시대와 불화를 겪는 과정을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는 비즈니스 맨….
아. 점점 더 시니컬해져가. 난 왜 예술가들이 싫을까. 사람은 점점 싫어져. 다만 물건(작품)이 좋을 뿐.
내가 보기에도 넌 약간 오브제 지향적이야.
예술가들은 의외로 비즈니스맨이지만, 그쪽 업계가 그럴 뿐 신형철이 말하는 문학의 영역에서는 의외로 ‘몰락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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