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들리지 않는 거리
주말은 좋은 것이다. 특히나,
직장인에게는.
뭔 놈의 일복이 이렇게도 많은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싱황이지만, 입사한 지 만 3년-하고도 1개월-을 꽉 채우는 동안 금요일에 야근을 한 적은 없다. 우리 회사의 인당 생산성이 낮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일은 많겠지만 적어도 쓸데없이 야근을 시키는 회사는 아니니까,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에 야근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납기만 지키면 주말은 (온전하지는 않지만) 나의 것. 이번 주말에 나는 토요일은 쉬고, 일요일에 일하는 것으로 자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어제는 회사 동료 여직원 두 명과 <워낭소리>를 봤다. 2009년 초반의 시네마테크에서 상영관 하나는 꿰차고 있는 것은 물론, CGV·시너스에서도 상영하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듣자하니 <우리 학교>나 <송환>의 기록을 깰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나의 소감은 조만간 이 블로그에 포스팅할 터이니 자세한 것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현직 대통령이 한반도에 등장한 뒤로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도 그렇겠지만)의 모든 거리는 ‘기쁨이 들리지 않는 거리’(이 노래에 대해서도 조만간 포스팅하겠다)가 되어 버렸지만, 우리는 3.5인치 플로피디스크보다 정확히 0.56MB만큼만 똘똘한 분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최원균 할아버지가 삶을 살아가는 속도로 천천히 신문로를 걸어 성곡미술관 앞 커피점으로 이동해 Lucid Fall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신’이었을지도 모를 케냐 커피를 마셨다. 저녁까지 함께 있을 계획은 아니었는데, 그녀들도 그 ‘느림’이 좋았던지 계속 헤어짐의 시간을 늦췄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 10시경, 영화 한 편 보고 커피 한 잔 마시는데 8시간을 소모했으니 적어도 서울사람들의 생활속도는 아닌게다.
오늘 아침에는 몇 달 전부터 고등학교 친구들과 하고 있는 스터디가 있었다. 이 모임의 홍일점인 여자친구와 나는 다른 남자친구와 함께 최근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이 두 번 있다. 콘서트가 끝나면 우린 항상 공연얘기와 인생얘기로 술을 마셨고,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헤어졌다. 워낙 수상한 세상이니까, 친구와 나는 택시를 타고 여자친구의 집에 데려다줬다. 내가 집이 좀 머니까 택시비를 조금 더 냈(다고는 하는데, 나도 택시비 많이 받았는데…)다고 오늘 선물을 주는거다. 고맙다고. 회사에 와서 바쁘게 일하다가 뜯어보니 초코렛이다. 난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초콜렛은 가나초코렛 밖에 모르겠는데, 우리가 같이 본 공연 중 하나가 My Aunt Mary라고 일부러 Mary’s라는 이름의 초코렛을 샀나 보다. 아직 먹어보질 않아서 맛은 모르겠다. 일요일 출근처럼 짜증나는 게 없는데 큰 위안이 되었다. 물론, 대학동기 한 명이 스페셜 게스트로 와서 스터디가 끝난 뒤 인도요리(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Saag Gosht를 포함하여!)를 쏜 것 때문에 기분이 더 좋았을 것이다.
요약하면 다큐멘터리 하나 보고, 매일 마시는 맥심 모카골드 대신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고, 매주 하는 스터디에서 선물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이번 주말은 유별나게 여유롭고 행복했다. 까칠한 척 하지만, 사람도 삶도 그런 것이다. 우리가 걷는 거리가 기쁨이 들리지 않는 거리일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있음으로써 나는 기쁘다.
아아 이 포스팅 좋아요. 워낭소리, 느림, 루시드폴, 아프리카의 신, 마이앤트메리만으로 가슴이 설렜습니다. 워낭소리는 곧 보겠고 마이앤트메리 앨범은 수집 예정입니다. 영화와 음악에 관한 포스팅도 기다릴게요 :)
아티스트명과 노래제목, 가사를 적절히 곁들여 포스팅하면 적어도 sesism님께서는 좋은 반응을 해 주시겠군요…
아, 이렇게 글로 적어놓고나니까 웬지 우리 모두가 너무 다정하고 따뜻한 친구사이같쟎아.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근사하게 느껴지고 말이지. 현실과 사진, 현실과 글 사이의 괴리는 얼마나 큰 것일까. 혹은. 함께 같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서로간의 기억의 차이는 또 얼마나 큰 것일까.
나한테는 어제 오후는 유쾌한 코믹씬에 가까웠는데 말이지. 비슷한 오타쿠들끼리 모여서 집요하게 스터디를 하고 무언가를 아구아구 나눠먹는. 큭큭.
자세히 읽어보면, 너의 기능은 ‘결제’에 국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기억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