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의 마스터시리즈 Ⅱ>

지난 1월 22일 목요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의 마스터시리즈 Ⅱ>를 보고 왔다.
내 인생의 첫 클래식 콘서트였다.
중·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던’ 음악을 제외하고,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클래식은 손을 꼽는다. 친구가 생일선물로 준 클라우디앙 아바도와 카라얀 베를린 필의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지금은 CD가 없어져서 몇 번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잭필드바지 3종세트 39,990원과 다를 바 없는, 지하철에서 산 컴플레이션에 포함된 라흐마니노프와 베를리오즈. 어둠의 경로를 통해 들었던 글렌 굴드정도가 내 인생 클래식의 전부였다. 따라서 예습이 필수였는데, 야근 때문에 예습할 시간도 없었다. 한 주 내내 계속된 야근으로 인하여 무척 피곤한데다가, 하필이면 목요일 오후에 있었던 그룹 채용담당자 회의가 쓸데없는 얘기의 무한루프로 진행되면서 피로가 극에 달해있어서, 클래식 콘서트에서 코고는 몰상식한 청중이 되지는 않을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잘 보고 왔다.
흔히들 나처럼 하드락을 열심히 듣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재즈와 클래식을 듣는 쪽으로 취향이 자연스레 바뀐게 된다 얘기를 한다. 나는 그 동안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이론(?)을 배척해 왔다. 첫째, 나는 어떤 사람의 취향이 문예사조처럼 무 자르듯 단계나 기간을 나눌 수 있도록 형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둘째, 나이가 들면서 재즈와 클래식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 속에는 (어른들이 듣는 거니까) 재즈와 클래식이 팝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식 혹은 재즈와 클래식이 (어른들이 듣는 거니까) 좀 더 고상하다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콘서트를 보면서 느낀 것은 내가 잘못 생각했었구나 하는 것이다. 아 굳이 클래식이니 재즈니 나눌 필요 없었구나. 내가 나누고 있을 뿐, 팝이든 클래식이든 모두 음악인데. 무협소설에서 얘기하는 ‘만류귀종’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영화를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감독, 배우 또는 내러티브나 미장센같은 것들이고 (물론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보다 재밌기는 하지만,)장르는 그냥 참고사항일 뿐인데, 정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에서는 그렇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좀 더 관대하고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들어야겠다. 일단 요즘 뜬다고 하는 소녀시대부터 들어볼까… ㅋㅋ
모짜르트에서 대해서는 크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브루크너의 경우 이름을 들은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절대 초심자가 쉽게 들을 수 있는 부류의 작곡가는 아니었다. 함께 갔던 형의 설명을 들으니 연주하기에도 쉽지 않다고 한다. 1악장은 서울시향이 좀 긴장한 것 같았고, 2악장부터 맑고 정확한 소리들이 하모니를 이루기 시작하더니 3~4악장에서는 정명훈부터 시작해서 서울시향은 물론, 관객까지 장엄한 연주에 완전히 몰입한 듯 했다. 나는, 3악장 말미에 집중력이 떨어져서 살짝 졸았다. ^^ 어쨌든 무척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유일한 단점은 금관악기, 특히 튜바였다. 정확히는 바그너 튜바라고 한다. 나는 박치에 절대음감같은 건 소유할 가능성이 제로인 사람이지만, 튜바만 나오면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단점은 아니지만, 콘서트마스터가 절정부에서 미친듯이 연주할 때 발을 앞뒤로 왔다갔다 움직이는 게 꼭 게임할 때 보면 비행기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몸 틀고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트는 꼬마 녀석들 보는 것 같아서 3악장에 떨어졌던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커튼콜을 진행하는 동안 서울시향 단원들이 모두 뿌듯한 표정이길래, 일행에게 물었더니 내가 본 공연 정도 수준이면 정명훈이 피나는 훈련을 시켰을 것 같다고 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커튼콜이 진행되고 있는데, 정명훈의 뒤에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 두 명이 뭘 들고 쫓아나오길래 개념없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이 날이 정명훈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앵콜곡은 자그마치 “생일 축하합니다”였고, 덕분에 브루크너를 연주한 100명짜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생일축하송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장엄하더라. ^^
멋있었겠구나. 부럽다. 너무 가고싶었는데 가지못한 길이라서 그런걸까. 음악회는 웬지 잘 안가게 돼. 너무 감정적으로 격앙되는 경우가 많거든. 좋든싫든말야. 예전에 혼자 정명훈씨가 지휘하는 음악회에 갔다가 챙피할정도로 운 적이 있어서 새삼 다시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싶네.
휴, 너의 힘을 감당하려면 피아노 건반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야 하고, 바이올린 현은 탄소섬유로 만들어야 할테니… 지금 네가 가고 있는 길이 오히려 세계의 악기장인들에게는 감사한 일일꺼야. 물론, 너의 직장동료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한 마디를 전한다. 그들은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