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오이지
역사비교언어학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재미있는 과제를 내 주셨습니다.
'오이지'의 어원에 대해 생각해보고,'~지'류의 음식을 찾아보라.
는 것이었는데요, 저는 처음에 김치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치의 고형 중에는 '짐'라는 형이 있거든요. 김치와 오이지는 둘 다 절여서 만드는 음식이고,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색깔까지도 비슷했을테니까요.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지'의 어원은 '디히'라는 고유어였고, 절인 음식이나 김치류를 통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전라방언에서 국물김치를 '싱건지'라고 부르는 것이나, 경상도에서 김치를 '지'라고 하는 것이 그 흔적이지요. 그러던 것이 '딤(沈菜)'라는 한자어가 만들어져서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입니다.
'디히'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두시언해 중간본(1632)인데,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겨디히'에서의 '디히'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 1820~30년 경『언문지』의 유희가 펴낸 어휘사전『물명고(物名考)』에서는 '디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디히>디이(모음사이에서 ㅎ탈락)>지이(구개음화)>지(음운축약)'의 과정을 거쳐 '지'가 된 것입니다. 오이지, 짠지, 단무지, 젓국지, 싱건지, 똑딱지, 섞박지… 이런 것들이 모두 '~지' 계통의 단어들입니다. 모르는 '지'들은 한 번 사전을 찾아보세요. 저의 경우 설명을 읽고 언제 한 번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언어는 죽으면서 그 흔적을 남깁니다. 역사비교언어학은 오늘날의 언어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더듬어서 먼 옛날의 언어를 밝히는 학문이지요. 황당한 과제가 많아서 괴롭긴 하지만, 역사비교언어학 덕분에 즐겁게 공부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