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2002년 내가 군에 입대했을 때 나는 24살이었고, 나와 동갑인 사람들은 이미 전역했거나 대부분 말년병장이었다. 내 동기들은 모두 나보다 두 살 이상 어렸고, 선임 중에서는 동갑이 한 명 있었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자기 누나 혹은 형과 비슷한 나이인 나를 성폭력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적어도 우리 소대에는 없었다. 내 선임과 동기들의 옷 속으로 손을 넣고 온 몸을 더듬던 일명 ‘변태 병장’도 나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내가 ‘변태 병장’의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것에는 명문대에 재학중이라는 사실도 작용했다고 하니, 이등병이던 시절에도 나는 이 놈의 학교덕을 본 셈이다.
전역하기 서너달 전에 다른 대대에서 사고를 치고 전역하게 된 중사 한 명이 우리 부대로 전입을 왔다. 나는 이미 상병 때 대위인 인사과장에게 성희롱이라며 빠득빠득 개긴 전과가 있었다. 인사과장은 경우에 따라서 장난으로 봐 줄 수 있다고 쳐도 이 놈은 아니다. 안마를 시키길래 그냥 꾹 참고 하라는대로 했는데, 갈수록 심해져서 나중에는 뒤에서 자기를 안아달라고 하기도 하고 자기 가슴을 좀 만져보라고 하기도 하고… 그랬다. 어느 날 뒤에서 껴안아보라고 하길래 거부했더니 내 두 손을 붙잡고 강제로 자기가 원하는 포즈를 만드는 것이다. 이때는 정말이지 너무 무서워서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도망갔다. 부하를 잘 둔 덕에 인사과장 사건 때 중재를 했던 작전장교가 또 흡연실로 찾아와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고, 결국 중사가 나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일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그 중사가 전역할 때까지 나는 항상 불안했고 두려웠다.
이채님의 포스트로 미루어 볼 때, mi-ring 블로그에 이 주제를 제안할 때 이채님은 생존자 말하기 대회와 비슷한 위상의 것을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애초에 내 경험에 대해서 침묵한 적이 없고, 인사과장과 중사에게는 극도의 태업을 통해 복수했기 때문에 별로 아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중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주었던 그 불안함과 두려움이 아마도 생존자들이 치유하고 싶어하는 고통스러운 기억들과 유사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것을 처음 경험했던 새내기 시절에도, 성폭력 사건에 실제로 관여했던 2000년에도 내가 직접 경험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한 이후에 나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당신과 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 개연성을 믿는 것이 개자식을 격퇴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생존자 말하기 대회의 위상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날도 더운데 찌질이 마초들은 극성을 부리니 시원하게 씹어나보자고 생각해서 제안한 주제입니다. 제 포스트에도 나와있지만 저 역시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몇 가지 기억들까지 이야기하려고 생각했었구요. 그 외의 이야기들은 내가 아는 두세 사람 외에는 모르는 일들이구요.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어요.
아팠던지 이젠 속에 담아두기가 싫었던지. 저 역시 조금은 낯선 경험이었답니다.
그리고 생존자의 말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과정인지 알기 때문에 전 감히 그걸 제안하진 못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면 함께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요 ^^
아 네…
헉헉헉..;;; 남자 선생님들이 군대에서 성폭력 꽤나 심하다고 했는데 정말이로군요…-0-;;;
남의 얘기를 쓰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쓰지 않았지만, 제가 듣고 본 것만 해도 은하님이 상상하시는 범주 바깥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등병때 ‘변태병장’들의 리스트에 올라있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써 어느정도 공감이 갑니다. suksim님과 달리 학교덕을 못본 이유라면 아마도 1학년을 마치고 바로 군대에 갔었기 때문이겠죠.(98년) 제대한지 만5년이 지났음에도 군대에서의 기억들은 아직도 잔향을 풍기고 있다는 사실이 참 무섭군요.
여러모로 끔찍한 기억을 남기는 곳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