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에 대한 생각
언어인(言語人) Homo Linguisticus은 동시에 위계인(位階人) Homo Hierarchicus이다.
피에르 부르디외,『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의 역자(정일준) 서문 중에서
언어 자체는 중립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지만, 확실한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절대로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대화라는 행위는 단순히 음성기관에서 만들어진 음향이 청각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발화되는 순간 관계를 규정하고 위계와 권력을 함의한다. 경어법이 무척 발달한 한국어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조상’님’들께서는 돌림자라는 것까지 만드셔서 아예 이름에다가 (친족)관계를 규정해 놓으셨다. 친절하기도 하시지. 덕분에 전 세계 광산 김가가 다 모여도 내 서열을 파악할 수 있다. 존대와 하대, 높임과 낮춤, 호칭어들은 부지불식간에 나와 그/녀의 관계를 규정해버린다.
어제 메신저에서 반말에 대한 작은 다툼?, 논쟁? 대화? 하여튼 그런 것이 있었다. 불쾌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어색했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어쨌든 좀 미안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즐겨쓰는 어미 ‘~냐?’가 문제가 된 듯 하기도 하고, 내가 좀 싸가지가 없어보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존댓말과 반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만약 전두환을 만나게 된다면 면상 앞에서는 존댓말을 쓰겠지만, 속에서는 오만 욕을 다할 것이다.(학살자에게 경어사용 불가!) 반말보다 중요한 것이 언어에 부여된 진심이 어떤가이다. 화자의 진심만 전해진다면 혹은 전해지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막 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어떠하랴. 오히려, 반말을 쓰는 것은 ‘상하’가 아니라 ‘상호’의 관계를 가능하게 아주 좋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내가 높임말을 써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제안을 자칫 사달이 날 수도 있는 행위인지라,)나에게 높임말을 쓰는 사람들에게만 반말을 하자고 제안을 한다. 물론 조금 친해진 뒤의 얘기다. 그러다가 나와 너댓살 차이나는 후배한테 쓴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자꾸 괜찮다며 반말을 하는 게 어떠냐고 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잘 이해를 못 했는데, 군대에 가서 알았다. 병장이 지보다 서너살 많은 이등병(바로 나다. -_-;) 앉혀 놓고 나이도 많은데 반말하라고 자꾸 그러는데 무척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군대 안에서와 밖에서의 일을 등치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 뒤로 나는 아무한테나 반말을 제안하지는 않는다. 반말을 쓰게 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더라. 학번이라는 숫자로 위계가 확실히 그어지는 대학교에서는 참 어려운 일인듯. 하지만 여전히,
반말을 쓴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경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믿고 있다.
덧 하나 : 그러니까 이 블로그에서는 반말을 하고 싶으면 하고 존댓말을 하고 싶으면 하라는 얘기다. 물론 이곳에 가끔 찾아오는 두 명의 후배와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후배님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덧 둘 : 경영대 매점은 왜 17茶를 팔지 않는 것이냐!
아냐아냐, 그런 거랑 좀 달라. 당신은 아직도 감을 못 잡고 있군. 설명하기 어렵네.
석심 말투가 원래 좀 그렇다는 건 이미 눈치챘음. 싸가지 없어 보이는 건 아니야. 글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한테는 비슷한 말투를 써. 흐흐.
나는 수평적인 관계에 나이/성별 권력이 개입되는 말의 뉘앙스가 들어가는 걸 꺼린다는 얘기를 한 거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말이야. 사실 어쩌다 나온 단어 하나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을 수도 있어. 관계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좀더 분명히 해두고 싶었을 뿐, 뻣뻣한 말투를 탓하는 것이 아니야. 그렇게 이해해주길. ^^
아직도 감이 안 잡히는 것일까…?
아는 오빠랑 원래 말을 트고 지내는데,내가 ‘~냐’라고 얘기했더니 바로 “어,이제 아주 맞먹으려고 드네.”라는 반응이 나온 적이 있어.뭐,그 오빠랑 워낙에 친했었고,그 말로 기분이 그리 나빠 했던 것 같지 않아서 그날은 그냥 대충 넘어갔지만 나는 사실 그 말이 왜 잘못된 건지 몰랐어.내가 원래 친척들 사이에서마저 언니,오빠가 없었던 데다가 아는 언니 오빠들이랑은 워낙에 막역하게 지내서 그런 걸로 지적받은 적이 없었어.그런데 그 말투에 대해 지적을 받게 되니까 왜 지적받았는지 모르면서도 그냥 그 말을 아예 안쓰게 되더라구;;;
중학교 처음 입학했을 땐 선배들한테 존대쓰는게 어색했어.(선배한테 존대하는게 아예 교칙에 있었거든;이사가고 전학가면서 그런 교칙이 없어서 좋아했어.)그래서 문방구에서 뭘 사다가 다른 학교 언니한테 반말을 했다가 “너네 학교 선배들한테 그렇게 반말 쓰면 혼나.”라는 지적을 들은 적도 있지=_=
형, 누나들이 다 유부남녀에 심지어 우리 아빠보다 나이 많은 형들도 있는 나는 더욱 심했는데… 뭐 서너살 차이쯤은 우습더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