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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조카는 나보다 한 살이 어리지만 생일이 빨라 우리는 대학 동기가 되었다. 큰 조카는 두 살이 많은데,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고 한다. 성년이 되면서 어른들은 그 애들더러 나한테 존대를 하라고 했다. 하긴 내가 조카들 아버지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니 반말하기도 좀 그렇긴 하다. 어렸을 때 우리는 꽤 친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렇게 우리의 친밀함은 끝나버렸다. 대구에 큰 아버지 댁에 가뭄에 콩나듯 제사지내러 갈 때마다 우리가 주고받는 것은 이제 형식적인 인사뿐이다. 서로 어색해서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다. 작은 조카를 오늘 학교에서 만났다. 늦잠이라도 잔 모양인지 자연대쪽으로 황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안녕’하고 인사를 했더니 목례 한 번 하고 가버린다. 한 달 쯤 전에 복학하고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그녀에게 ‘오랜만이네? 잘 지내냐?’라고 물었을 때 돌아왔던 대답은 ‘예.’ 한마디였다. 그녀는 다시 식판으로 시선을 돌렸고, 어색해진 나도 밥을 먹었다. 친척이라고 해서 친하게 지내야된다는 생각같은 건 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남도 아닌데 이 정도까지 어색해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조카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으니 더 심하다. 물론 훌륭하신 선비집안에서 망쳐놓은 것 중에는 내 친척관계만이 아니라, 여동생과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너 페미니스트야?” 혹은 “너 여성주의자야?”처럼 어느 쪽인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대충 이런 사람들의 80%는 마초이고, 20%는 저런 질문으로 내가 자신들의 동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이다.이런 질문으로 자신과의 교집합을 확인하려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인 것 같다.). 저런 경우에 나는 그냥 아니라고 대답한다. ‘남성 페미니스트’와 같은 단어에 대해 고민한 적도 있지만 그게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레테르를 뭔가 하나 붙이고 싶었기 때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제 그런 거에 별 관심없다. 나에게는 내가 세운 기준들이 있고, 그냥 그 기준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한다. 다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성별에 관계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것이라는 말처럼 기만적인 말이 없으니) 현실적으로 말하면 즐겁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촌수, 성별, 나이 등등과 관계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가시나는 공부 못해도 된다.’라는 말에 상처받는 동생이 나를 미워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고, 친해지지는 않더라도 조카들과 학교에서 만나면 웃으면서 차 한잔은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밤에 내 앞에 가고 있던 여성이 불규칙한 구두굽소리를 내며 불안함을 드러내는 일도,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일면식도 없는 여성이 나를 경계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이의 신뢰가 더욱 쌓여서, 의도하지 않게 치한으로 몰리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지하철을 탈 때 여성전용칸이 운영되는 시간인지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질 것 같다. 내가 촌수가 높거나/낮아서, 나이가 많거나/적어서 혹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사양이다. 말하자면 나는 이런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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