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다가…
여름학기 경제학개론 수업의 서평도서는 선생님께서 쓰신 『세계화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였다. 책은 초국적기업과 세계화시대의 자본축적에 대해서 쉽게 설명하더라. 잘 읽고 그럭저럭 좋은 서평을 쓸 것 같았는데, 반세계화 운동과 세계화의 대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5장에서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네그리와 하트가 말한 것처럼 시애틀 전투에서 “전지구적 체계가 야기하는 불의와 불평등에 대한 수많은 불만들이 최초로 현실적으로 합류”했다면, 한국에서 최초로 ‘불만들의 합류’가 이루어진 것은 아마도 ASEM 투쟁일 것이다. 2000년 10월, 그 거리에 서서 느꼈던 분노와 무력감이 생각났다. 아셈타워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리케이트만큼이나 대안세계를 마련하는 길은 멀어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국까지 갔다온 뒤에야 수습된 긴 방황에 이 날의 기억이 작용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의 내 삶이야 그야말로 돼지지만, 나는 감히 서평의 마지막에 ‘저항하는 것은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꿈을 꾸는 것‘이라고 써버렸다. 물론 다른 세계’들’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말이다. 졸업이니 학점이니 핑계대고 입으로만 나불나불거렸는데 선생한테 공수표도 날렸겠다, 이제 슬슬 희망의 증거들을 다시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저항’, ‘투쟁’, ‘변혁’, ‘혁명’과 같은 단어들은 너무 많이 이야기되어서 이제는 낡아빠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파울 클란이 노래했듯 그건 오로지 시대의 잘못이다.
어떤 이야기가,
그것이
너무 많이 이야기된 것이므로,
거의 일종의 죄악이라면,
그것은 어떤 시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