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목적>

세부적인 줄거리가 나와 있으므로 스포일러를 우려하시는 분들은 읽지 마시길.

<연애의 목적>을 굳이 보고 싶었던 이유는 꽤 많다. 이 영화가 정말 본격 종합 범죄물인가 궁금했고, 고윤희 작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는 이유도 있다. ‘웰메이드 홍상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영화를 본 사람이 이미 100만명이 넘었는데 이 영화에 대해서 내가 접하는 정보는 유림(박해일)에 대한 이야기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홍(강혜정)은 영화에서 도대체 어디 쯤에 위치해 있는 것인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 글 역시 유림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세간의 평가대로 유림은 성희롱, 성폭력, 강간의 성범죄 3종 세트였다. 39,800원짜리 잭필드 3종 세트와 유림의 공통점은 간단하다. 너무 구리다는 것. 더욱 구린 것은 유림이 교사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교생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어린아이가 연상의 누나한테 조르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유림의 ‘같이 자고 싶어요.’는 내가 5살 때 엄마한테 매일같이 말했던 ‘아삐삐(아이스크림) 사줘’와 같은 의미다. 애인과 대화하는 그 순간에도 게임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이 아이는 다른 사람의 감정따위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가 있으면 기필코 충족시켜야 한다. 학교가 ‘정치적이라서 분위기 잘 보고 밀고 당기는 걸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유림의 분노가 폭발했을 때, 다섯 명의 남학생과 한 명의 여학생에게 가해지던 그 폭력이 너무나 끔찍했다. 어른의 육체에 아이의 정신상태를 가진 이유림은 보채면 어르면 되는 어린아이와 다르다.

‘박해일은 바람둥이는커녕 약자이며 풋내기이고 이 영화는 그런 박해일의 성장영화이다.’라는 작가의 코멘트와 달리 오히려 영화에서 성장해나가는 것은 홍이다. 과거의 사랑(?)때문에 불면증까지 생겨버린 그녀다. 그러나 홍은 다종다기한 사건들이 진행되고 유림과 다시 만나 간 오뎅바에서 불면증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단지 ‘단맛을 아는 자는 지고, 쓴맛을 아는 자는 이기는 게임이 연애’라는 작가의 지론을 시나리오로 잘 옮겨놓은 영화인 듯도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 세상천지에 성추문의 생존자가 다른 남성에게 강간 당하는 것을 통해 부활한단 말인가? 또한, 유림과 달리 홍에게서는 일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피맛골 여관에서 나와서 분위기 좋게 농담도 하다가 뜬금없이 ‘이 선생님이 나 강간한 거예요.’하고 잠적해버리는 부분에서 나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다. 홍, 너의 정체는 뭐냐?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 홍은 여성이었다. ‘아니, 그걸 누가 몰라?’라고 물으신다면 ‘남성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정도의 수식어를 붙이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여성학 시간같은 때 수시로 나오는 ‘마리아와 마돈나’를 홍이라는 캐릭터에 그냥 합쳐버린 것이다.

유림과 홍이 어떤 인간들이든지 간에 영화를 보면서 가장 소름이 끼쳤던 것은 <연애의 목적>이 함의하고 있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함의가 의도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너 때문에 여자는 믿을 수도 없고, 믿지도 않는다.’는 유림의 넋두리에 충분한 거리를 두지 않는다면, 함정에 빠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영화 중반에서 유림은 체육수업으로 인해 빈 교실로 홍을 데려간다. 그리고 유림의 여자친구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홍의 선배에게 어디까지 얘기했냐고 묻는다. 둘 사이의 개인적인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유림의 대사를 통해 영화는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에 멍석을 쫙 깔아준다. 유림은 홍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에게 했다는 이유로 비정상이고 미쳤다고 홍을 매도하는데 이거 부부강간이나 데이트강간을 부정하는 이들의 근거 아닌가. 영화의 거의 끝부분에서 홍은 유림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진술하고 유림은 매장된다.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유림이 둘러대는 수준에서 영화가 끝났다면 영화를 열심히 욕하고 잊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고 보니 어디선가 접해 본 이야기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성폭력 사건이 공개되어 피해자 진술서와 가해자의 공개사과문이 나붙었을 때, 자보를 읽고 있노라면 주위에서 들려주던 이야기다. ‘암묵적 혹은 소극적 거부는 동의’라는 이상한 논리에서 출발하는 이 이야기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은 아예 모르거나 알더라도 무시하는 이들의 입에서 흘러 나온다. 이 이야기는 ‘모든 역사는 술과 함께 일어난다. 술을 먹은 두 사람은 한 방에서 자게 되는데, 이때 거부를 안 했기 때문에 화간이다. 실은 피해자도 좋았으면서 이제와서 웬 성폭력이냐?’와 같은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시나리오를 써내려 간다. <연애의 목적>은 그 시나리오에서 탄생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범죄가 실은 연애일 수도 있다는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나리오.

영화의 마지막, 결국 술 마시다가 필름이 끊겨서 어찌저찌해서 다시 하룻밤을 자 버린 유림과 홍이 여관에서 나오자, 흰 눈이 쌓여 있다. 홍의 말대로 그들이 (다시 만난 뒤에) 처음 밟는 길이다. 유림과 홍은 그렇게 어제의 시간들을 덮어버린 순백의 눈을 밟으며 새로 출발한다. 강간범과 기이한 생존자의 화해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덧 하나 : 6월 27일 늦은 5시 5분 결국은 혼자서, 신림역 프리머스의 뒷쪽 구석에서 수많은 연인들과 함께 봤다. 이 영화를 혼자서 보거나 남자친구와 함께 보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어떻게 보면 연애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매표소 직원이 ‘한 장이요?’라는 질문을 두 번이나 되풀이하던 그 순간 끓어오르는 그 감정이란.
덧 둘 : 내러티브 상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박해일과 (특히,) 강혜정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오프닝 화면에서 유림과 홍이 앉아있던 그 벤치의 풍광도 맘에 들었다.

RSS feed | Trackback URI

1 Comment »

No comments yet.

Name (required)
E-mail (required - never shown publicly)
URI
Your Comment (smaller size | larger size)
You may use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in your comment.

Trackback responses to this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