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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제’ 혹은 단지 ‘축제’

개인적으로 2005년 봄 축제인 다섯 번째 ‘광합성놀이터’가 마음에 들었다. 축제하는 사람들의 역량이 이제 본 궤도에 오른 것인지 축제는 참신한 아이템들로 넘쳐났다. 특히 Oh! Wall은 탁월한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무려 7년 동안 진행된 김민수 교수의 무학점 연대강의 포스터, 논쟁하는 대동제가 열린 계기가 되었던 미대 만화창작동아리 ‘순간이동’의 만화가 전시되었다. ‘영상’에서는 정치/비정치의 이분법을 넘어 서울대인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출품(?)했고, 스킨스쿠버 동호회가 바다에서 찍어온 사진도 있는가 하면, ‘미동’의 액션페인팅도 있었다. 학내 문예동아리들의 다양한 상상력을 이 정도로 기획해 낸 축제가 있었는가. 물론 ‘Oh! Wall’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관악에도 문화자본의 마수가 조금씩 손을 뻗고 있다는 징후들이 엿보일 뿐더러, 무엇보다 ‘즐거운 축제’를 넘어 대안적 축제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남지만 말이다.

그러나 축제는 낯설었다. 2005년의 ‘축제’는 내가 기억하는 ‘대동제’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내 마음에 가장 들었던 ‘Oh! Wall’은 단지 ‘오월’이라는 이름만으로 대동제와의 괴리감을 불러 일으켰다. 메이퀸과 쌍쌍파티로 대변되는 70년대에서 80년대 초의 대학축제가 사라지고 ‘대동제’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광주 민중항쟁 이후의 일이다. 80년대의 야만이 시작된 피의 광주에서 죽어간 그/녀들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산 자여 따르라‘고 외쳤던 새로운 축제가 바로 ‘대동제’다. 5월 18일이 낀 주에 (거의) 모든 대학의 봄 축제가 시작되는 것도 ‘대동제’의 기원이 80년 광주에 있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 할 자가 화수분처럼 줄지 않는 29만원에 의지하여 호위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3일 간의 축제기간 동안 ‘5·18′ 단 세 글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80년대가 아니고 90년대도 아닌 무려 2005년. 분명 이십오년전의 오늘은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지만, (물론 나도 기억은 없지만,) 80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87년에도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2005년의 대학생들에게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오년전의 광주를 기억하는 것조차 힘겨운 시대다. 그러나 힘겹지만 기억하는 한 희망은 있지 않을까 싶다. 단지 쉽게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대동제’가 사라졌을 뿐이다.

재미없다고 소문난 관악의 ‘대동제’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희망은 다른데 가서 찾고) 재미있는 서울대의 ‘축제’를 즐기면 된다.

덧붙임 : 유가협 장터에서 박종철 열사 아버님께 인사를 드렸다. 3년 전에는 몸이 좀 편찮으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건강은 괜찮으시다고 한다. 실제로 정정해 보였다.

  1. May 24th, 2005 at 00:02 | #1

    오월, 좋게 보았다니 감사합니다. :-)
    나중에 좀더 자세한 코멘트 듣고 싶군요.
    5.18, 대동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죠.
    이번 축제 끝내고 나서도 걸리던 부분이었습니다. 상황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자세히 말하긴 그렇구요. 언제 기회되면 뵙고 이야기하면 재미있을 듯.

    • May 26th, 2005 at 21:49 | #2

      제 머리에서 ‘좀 더 자세한 코멘트’는 무리가 아닐까 싶어요. ^^

  1. May 24th, 2005 at 00:12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