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자르 Büyük Adam Küçük Ask>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표지이다. 의미도 없이,
아픔도 없이 우리는 존재하며, 거의
언어를 타자에게 상실하였다.
쿠르드족의 비애는 제목도 아직 알지 못하는, 하이데거가 인용했던 횔덜린의 시가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하이데거는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했지만, 터키어를 강요받으면서 자신들의 언어를 상실한 쿠르드족에게는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헤자르 Büyük Adam Küçük Ask>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바로 그 현실에서부터 시작한다(이 영화가 출품되었던 Antalya 영화제의 영어 팜플렛 제작을 맡은 현직 영어교사 두 명이 ‘Kurdista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했다.).
가족을 잃은 5살짜리 쿠르드족 소녀 헤자르(Hejar는 쿠르드어로 ‘빼앗긴’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꾸란을 쿠르드어로 번역하기도 한 유명한 쿠르드족 시인의 필명에서 가져왔다고 한다.)와 전직 판사인 75살짜리 투르크족 리팟 베이는 분명 터키의 쿠르드족과 투르크족에 대한 은유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리팟 베이가 가정부 사키네(그녀는 쿠르드족이다.)의 집에 찾아가 쿠르드어를 배우는 장면과 헤자르와 리팟이 배 위에서 터키어와 쿠르드어를 번갈아가며 사용하며 서로의 언어를 배워가는 장면이다.
결국 헤자르는 에브도와 함께 엄마를 찾기 위한, 기약없는 길을 떠난다. 현실 앞에서 언어는 무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력하기 짝이 없는 언어는 소통의 가능성을 잉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