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언어에 나타나는 사회성에 관한 연구
지난 2004년 여름학기 “언어의 이해” 기말보고서로 제출했던 것.
군대언어 연구의 계기
소쉬르는 기호 sign를 기호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보고 두 하위요소인 기표 signifier(기호)와 기의 signified(의미)로 나누었다. 또한 기표와 기의는 하나의 복합체로서 기호를 형성하며, 기표와 기의와의 관계는 사회적인 약속 convention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회적인 약속의 규약을 랑그 langue라고 하였을 때, 이 약속의 발현은 빠롤 parole이 된다.
비록 과거에 비해 그 정도가 많이 약화되었지만, ‘병영국가’로 규정될 정도로 군대의 영향력이 막강한 나라에서 군대에서 사용되는 은어에 대한 사회언어학적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아직 접해 본 경험이 없다. 이는 군 조직의 폐쇄성으로 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2년여의 군복무 기간을 통해1), 군 조직사회 안에서의 빠롤들이 랑그화된 흔적들을 관찰할 수 있었고, 또한 ‘계급사회에서의 은어’라는 의미있는 사례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특정 사회집단의 언어인 은어가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특징이 군대언어에 군 조직의 특수성이 어떠한 형태로 반영되었는지 살펴보고, 그를 통해 군대언어가 어떠한 사회언어학적 특징을 가지는 지 살펴본다. 군대언어에 나타난 사회성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군 조직의 폐쇄성인데, 이로 인해 그 대상을 부득이하게 한정하고 군 복무기간 중의 참여관찰을 바탕으로 하였다.
군대조직의 특징2)
군대는 ‘일정한 지휘계통에 의하여 조직된 군인들의 집단3)‘이다. 군대에서 군사력이라는 것은 결국 합법적인 권력에 의거하여 일종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격한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가정이나 회사와 같은 사회조직과 다르기 때문에 그 구조와 기능에 있어서 극단적일 정도로 정형화와 표준화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초기부터 대규모 군대는 관료주의적 방식을 채택한 사회조직이었고, 예측성과 가측성을 인간행동의 규범으로 삼는다. 군대는 일종의 소사회를 이루어, 전체사회와는 가급적 독립하려고 노력한다. 군대의 관료제도에도 이러한 부분이 드러나는데, 위계질서의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군대는 사회조직 이상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회조직에 비해 그 구성원의 임무와 일상생활을 훨씬 더 완전하게 장악하는 공동체사회이기 때문에 직업군인인 간부의 생활은 징집된 사병의 생활과는 아주 다를 수 밖에 없다. 직업군인의 태도와 생활양식은 군대의 전통이 규정한 바에 따라 미리 결정되어 있고 허용하는 범위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징집된 사병은 군대라는 환경을 여러가지 제약과 곤란이 따르는 남성만의 사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1.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언어적 표현4)이 많다.
군대는 엄격한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중요한 구성원리가 위계질서의 원리라고 하였다. 군대언어의 특징이 대부분 어휘적인 면에 국한됨에도 불구하고5), 연구과정에서 위계질서를 확인시키고, 수직적인 조직사회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체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언어적 특질들을 다양한 분야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음성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초분절음이 이러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군대언어가 음성학적인 측면에서 일상언어6)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통제를 필요로 하는 제식, 훈련시에 초분절음7)의 사용이 빈번해진다. 이러한 경우를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유격훈련이다. 유격조교, 특히 해병대 유격조교의 말투는 대중매체에서도 종종 희화화될 정도로 특이한데, 그 이유는 화자와 청자를 분명히 구분지음으로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8). 군대에서 권위를 세우려는 의도의 발화는 억양이 없고, 자음들을 가능한 한 목젖의 방향으로 이동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말 /ㅎ/는 성문음임에도 불구하고 목젖 쪽으로 이동하여 독일어의 /x/처럼 발음된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덜 하지만, 치조음 또는 구개음 또한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상황적 코드전환(Situational Code-switching)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군대가 외부와 고립된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유사가족의 형태를 보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나이가 30살 전후인 중대장은 대부분 중대원들에게 ‘무섭지만 인자한 형’의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급사회에서 위계서열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생길 경우에 상황적 코드전환이 이루어지며, 이 코드전환의 빈도수는 매우 높다. 다음의 예는 본인이 전역하기 얼마 전에 실제로 있었던 대화로, 당시 부대는 1주일 동안 예비군들과 함께 전술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고, 한 주를 마무리하는 철야훈련을 위해 저녁을 먹고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중대장 : 집에 갈 때 다 됐구나. 이제 며칠 남았니?
suksim : 말년휴가까지 이틀 남았습니다. 열외 좀 시켜주십쇼.
중대장 : 뭐? 말년휴가라는 말 쓰면 안 되는 거 몰라?
suksim : 말년인데 뭘 그러십니까?
(일동 웃음, 잠시후 비상발령을 알리는 벨소리)
스피커 : 알려드립니다. 현시간부로 ~. 다음과 같이 상황이 발령되었습니다.
중대장 : 김분대장, 분대원들을 지휘하여 임무를 수행하라.
suksim : 예, 알겠습니다.
군대언어의 어휘들은 통사구조상에서 화용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에 따라 대부분 위계질서를 확인하는 기능으로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병장’은 매우 중립적일 수 있는 단어지만, ‘내가 너보다 연병장을 돌아도 두배는 더 돌지 않았을까?’와 같은 표현에서는 위계서열을 강조하는 기능을 충분히 수행한다. 어휘 자체가 위계서열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로는 ‘물’, ‘왕고’, ‘투고’, ‘짬’, ‘짬밥’, ‘호봉’ 등이 있다.
2. 맥락에 따라 이해해야 하는 표현이 많다.
군대언어의 또다른 특징으로 화행(Speech Act)이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언표내적 행위(Illocutionary Act)로 특히 병사들 간의 대화에서 많이 사용된다. 언표내적 행위를 사용하는 의도는 발화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후임병을 혼내거나 놀리려는데 있다. 가령 ‘짬밥 많이 먹었니?’는 ‘밥 많이 먹었니?’가 아닌 ‘너는 나보다 계급도 낮으면서 왜 그런 행동을 하니?’로, ‘요즘 편하지?’는 ‘요즘 내무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니?’가 아닌 ‘너희가 요즘 군기가 빠진 것 같은데, 폭언을 하기 전에 말을 알아들었으면 한다.’로 주로 사용된다.
수행문의 사용빈도도 높은데, 수행문은 언표내적 행위와 비교할 때 간부와 병사 사이에서 사용된다. ‘현 시간부로 전원 취침소등에 들어간다.’는 말은 당직근무자가 취침시간 전에 전달하는 (거의 고정된) 내용인데 실제로 당직근무자는 취침하지 않는다.
3. 역성볍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어가 많다.
군대사회에서는 언어학적 지식이 전무한 언중에 의해 형성된 역성법을 상당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왕고’는 1990년대를 전후하여 젊은 세대에서 관형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왕(王)’과 가장 높다는 ‘고참(古參)’이 결합된 뒤, 이것이 다시 줄어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런데, ‘왕고참’과 전혀 무관하게 ‘~고’가 서열을 나타내는 파생접사가 되어 영어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 ‘투고(two高)’나 ‘쓰리고(three高)’이다. 규정에 따라 행동하는 ‘FM’ 역시 교범이라는 뜻의 ‘Field Manual’에서 온 말이지만, 라디오 방송의 ‘FM’으로 잘못 유추하여 ‘AM’이 규정에 따르지 않는 행동을 의미하게 되었다. 군대용어에는 영어어휘가 많은데, 병은 물론이고 간부들도 그 정확한 어원을 알지 못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미군에서는 쓰지 않는 역성법에 의한 어휘들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4. 종결어미의 형태가 고정되어 있다.
군대언어의 종결어미는 크게 ‘~다’와 ‘~까’로 고정되어 있다. 이는 다분히 강제적인 정책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신병으로 처음 군대에 왔을 때부터 훈련소에서 주입시키기 때문이다.
5. 군대언어의 계층적 분화
군대언어 역시 일상언어와 마찬가지로 계층별 분화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다소의 예외는 있지만, 크게 장교/부사관/병의 임관구분에 따라 그 차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장교단은 군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계층이다. 실제로 각급 제대 지휘관 및 참모가 장교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장교로서의 자긍심이 대단하며, 각종 신조어 및 신교리의 유입에 민감한 편이다. 부사관 및 병에 비해 학력도 매우 높은데, 가장 학력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3사관학교 출신 간부조차 전문대이상 졸업자이다. 또한 장교는 특정지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다양한 지역으로 이동하여 근무하는 특징이 있다.
장교단은 교육수준이 높고, 다양한 지역에서 복무하기 때문에 표준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다른 계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지휘관 및 참모로 보직되는 특성상 각종 의식행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표준어가 아닌 임의의 지역방언을 사용하는 화자들도 표준어를 선택하고 빠른 속도로 동화한다.
또한 장교단은 군사학 수업을 가장 체계적으로 받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개정되는 각종 규정과 교리를 탐독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군대전문용어를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며, 정확하게 구사한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장교의 비율은 군 전체에서 대략 1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어휘의 정확성면에서 군 전체의 표본은 영어의 Received Pronunciation 그래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추측된다.
부사관단은 군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존재인 동시에, 부대관리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부사관단은 장교단과 다른 의미에서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며, 군대용어의 역사적 의미들에 대해 가장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학력은 병에 비해 높은 편이나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장교단에 비해서는 확연히 낮은 학력을 가지고 있다. 부사관은 한 부대 또는 한 지역에서 장기간 보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사관은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정년까지 군복무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때문에 평균연령이 가장 높다. 대개 40년 정도를 군에서 복무하는데 그 기간의 대부분을 한 지역에 머물러 있는다. 특히 부대에서 서열이 높은 부사관단은 대개 해당부대에서 10년 이상 간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하나의 단어와 그 주위에 산재한 언어의 역사적 의미들에 대해 박식하며, 이를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군대용어의 문화적 전달에 기여한다. 또한, 장교와 병의 중간계급으로 장교단의 연마된 언어와 병 집단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병은 국가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입대한 젊은이들로 예외는 다소 있으나 대체로 20대 초, 중반의 연령대에 속해 있다. 거주지역과 학력의 개인차가 가장 다양하다. 장교단과 부사관단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른 기간 내에 군대언어에 재사회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경직된 군대조직의 폐해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 폭언과 욕설, 구타와 성폭력이 만연한 병사계급인데, 비어나 은어를 잘 사용하지 않던 화자들도 후임병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할 것을 선임병들에게 강요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비어, 은어의 사용비율이 향상된다. 또한 군복무에 대부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이 일부 어휘에 나타나는데, ‘개목걸이’, ‘개밥’, ‘땅개’ 등이 그 예이다.
마치면서
지금까지 현재 군대언어로 통용되고 있는 자료를 기반으로 군대언어의 사회성에 대하여 분석해 보았다. 군대라는 조직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 격리되어 독자의 사회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군대언어는 군대라는 위계조직의 특수성을 반영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군조직 내의 계층에 따라 언어가 분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방법을 적용하기에는 자료가 지나치게 부족하고 특정지역에 국한된 경향이 있으며, 경험상의 제약으로 간부들의 언어에 대해 다소 추상적으로 접근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뽀글이’같은 일상어어의 관점에서 신기한 어휘에 초점을 맞추는 책이나 군대 내부의 관점에서 기술한 군대언어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달리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참고문헌
이익섭(1994), 『사회언어학』, 서울 : 민음사
남진우(1985), 『언어』, 서울 : 탑출판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CD EX (2002)
1) 2002. 4. 30 ~ 2004. 6. 8 ↑
2) 이 부분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CD EX(2002), “군대”를 인용하여 수정하였다. ↑
3) 연세대학교 언어정보개발연구원(2002), 『연세 한국어 전자사전』, 서울 : 한국브리태니커 ↑
4) 비록 군대언어와 관련하여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김근(1999), 「너 뉘집 아들이야?」, 『당대비평』9호, 서울 : 삼인>은 이 부분과 관련된 언어의 기능을 일상적 파시즘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
5) 전국에서 다양한 사람이 모였기 때문에 군대언어의 음운현상은 동일한 특질을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각 구성원은 개개인이 속한 지역방언의 음운을 취한다. 또한, 연구자의 언어학적 소양이 일천하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
6) 본고에서 ‘일상언어’는 ‘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는 언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
7) 초분절적 요소는 대개 억양이 된다. 성조, 강세, 연접, 장단 등은 각주 5)와 같이 구성원 개개인의 개인방언, 지역방언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
8) 실제로 유격조교양성교육에서 훈련을 받는 병사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말하는 지를 배운다고 한다. ↑
각주는 어떻게 넣으셨나요? 혹시 자동변환이 되나요
<a name> 태그를 사용하였습니다. 소스를 보시면 아마 바로 방법을 알게 되실 듯 하네요.
그렇다면 손수 하나 하나 변환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와.
좀 귀찮긴 해도 그 수 밖에 없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