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언제 배웠는 지 이제 기억도 안 나지만, 계용묵의 「구두」라는 수필에는 구두수선 한 번 잘못했다가 불량배로 오인받을 뻔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건을 통해 필자가 얻은 결론은 이런 류의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왜 모욕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이성(異性)에 한 모욕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나는 그 다음으로 그 구두징을 뽑아 버렸거니와 살아가노라면 별(別)한 데다가 다 신경을 써 가며 살아야 되는 것이 사람임을 알았다.
이런 내용이 교과서에 등장한 덕분인지 언제부턴가 늦은 귀가길의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이른바 ‘매너있는 남성’의 조건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천성이 게으른데다가 사람의 감정을 쫓아가는 것에 더딘 이유로 이런 류의 불편함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는 편이 아닌 나이지만 밤길이 무섭다고 귀찮게도 가끔씩 나를 부르는 여동생이 있는 관계로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것 말고 내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 있다면,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는 손을 허리 위로 올리기’이다. 대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생긴 습관이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요즘에는 거의 신경 안 쓰고 살았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치한과 변태가 넘쳐 흐르는 세상이라지만 불편하게 양손을 모두 허리위로 올릴 것은 없지 않냐? 여성이건 남성이건 나도 타인이랑 몸 닿는 건 싫다구.”와 같은 말을 했었던 기억도 난다. 그래도 마초라는 소리는 듣기 싫어서 몇 달 열심히 지키다가 흐지부지해진, 그런 버릇이다.
토요일 오후의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의 지옥철만큼은 아니지만 사람 많기는 매 한가지다. 갑자기 열차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밀려 뒷걸음질치는데 내 앞에 서 있던 여성의 엉덩이에 내 손이 닿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잘 안 빠지는 손을 빼고서 앞을 보니 나를 한껏 노려보고 계시다. “죄송해요.”라고 말했는데 고개를 확 돌려버리는 걸 보면 나의 사과가 고의성에 대한 인정으로 받아들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 ‘불편함’에는 다 감수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타인의 불쾌함보다는 나의 불편함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았다.
답글 남기기 어렵다.
홈페이지 만드느라 수고는 했다만, 니네 회사 홈페이지 덕분에 니 코멘트가 스팸으로 분류되어 있더라. 상업성있는 홈페이지만 안 쓰면 아주 입력 잘 된다.
쓴글은 삭제가 안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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