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의 돼지
신들의 계보를 노래하고 있는『신통기』에 따르면 키르케는 태양신 헬리오스와 오케아노스의 딸인 페르세이스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키르케는 『오뒤세이아』의 10권에 등장하는데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은 오뒤세우스가 키르케에 의해 돼지로 변한 부하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린다. 그 후 오뒤세우스는 키르케의 섬에서 1년간 머물며 아이들을 낳고, 섬을 떠날 때 키르케는 그에게 세이렌을 비롯한 이후의 장애물들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해 준다.
Circe
Wright Barker, ca.1900
도정일 선생은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에서 키르케의 마법에 걸린 오뒤세우스의 동료들을 모티프로 기억과 망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몸은 돼지로 바뀌었지만 정신은 인간의 것으로 남아있는 '키르케의 돼지'들은 비동일성과 분열의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구원받기 위한 전제조건인 '기억의 고통'과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구원받는 '망각의 즐거움'을 대비시키며 후기산업사회에서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도정일 선생에 따르면, '우리는 아직도 그녀의 마법에 걸려 있다.'
대학에 온 뒤로, 나 역시 가슴이 아프거나 잊고픈 기억이 있으면 종종 '키르케의 돼지'가 되어 왔다. 그것이 버릇이 되어 아무 일 없을 때에도 나는 자주 돼지가 된다. 어려운 방법은 아니고, 단지 마법의 약을 조금만 마시면 된다. 동료들과 꿀꿀대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돼지가 되어버린 몸은 고통스럽고, 머리는 다소 아프긴 하지만 적어도 기억은 모두 소멸되어 버린다. 고통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망각하는 것은 본질적이지는 않더라도 구원에 이르는 가장 손쉬운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손쉬운 구원을 택하곤 하던 나쁜 버릇을 이제는 거의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기를 먹지 않게 되면서 의도하지 않게 돼지가 되는 일이 다시 많아졌다. 고기가 포함되지 않는 술안주는 거의 없는지라, 빈 속에 술을 마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나는 술자리에서의 대화는 커녕 MSN대화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단지 내 주량의 반 정도를 마셨을 뿐인데. 그래서 일요일에는 돼지고기와 조개를 빼달라고 한, 정말로 김치 밖에 없는 김치찌개를 안주로 술을 마셨다. 같이 마신 친구에게 정말로 미안했다. 사실, 그냥 고기를 먹은 뒤에 '키르케의 돼지'가 되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술을 마실 때마다 육식의 유혹이 드는 마당에서 아주 좋은 핑계가 아닌가? –; 분열의 고통을 겪고 있는 나 스스로를 이번엔 어떤 방식으로 구원할 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동안처럼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은 지양하고 싶은데 말이지.
으헉, 제 친구의 별칭이 키르케인데… 제목 보고 좀 놀랐다죠. 히히히;;
『오딧세이아』에서 키르케에 붙는 수식어는 '머리를 아름답게 꼬아내린 fair-braided'인데, 친구분의 헤어스타일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참고로 전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 중 키르케를 가장 좋아해요. ^^
음… 채식을 하는 분들에게는 정말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술자리인것 같아요… 저야 뭐 채식은 아직 용기가 없어서리… 암튼 키르케의 돼지라… 좀 봐야되겠는뎁쇼… ㅋ
아무리 생각해도 술자리가 가장 문제인 것 같아요.
키르케가 돼지가 된 사연을 알아보다가 들렀습니다.
전 채식주의는 아니지만 채식주의자가 ‘잘 먹고 잘 살기’ 어려운 나라 중 하나가 우리나라 같다는 생각은 종종 해요.
아 위에 키르케가 돼지가 된 게 아니고…오딧세우스의 부하들이 돼지가 된 사연으로 수정 ^^;;;;